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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진단] 트럼프를 대하는 자세

차 주 범 / 민권센터 선임컨설턴트

2016년 11월 8일 저녁에 미국은 예상치 못한 대선 결과를 마주했다. 트럼프를 지지했건 싫어했건 놀라긴 공히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트럼프 본인이 제일 놀랐을 것이다. 클린턴은 승리연설을 할 ‘빅토리 파티’의 장소로 거대한 제이콥센터를 지정했었다. 트럼프는 훨씬 작은 규모인 힐튼호텔 행사장을 예약했다. 결과를 예상한 양쪽의 태도를 상징한다.
트럼프는 그날 함량이 매우 부족한 승리연설을 했다. 준비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분노하는 백인 노동계층을 자극해 돌풍을 일으킨 그가 정작 준비된 대통령인지 의심하게 한 장면이었다. 앞으로 트럼프는 그의 승리소감처럼 애매모호한 불확실성의 시대로 미국을 인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를 혐오하는 시민들은 그의 당선을 충격과 공포로 받아들였다. 이민자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나서면서 공언한 초강경 반이민 공약들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지난 여름 국경지대인 애리조나에서 10대 이민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남부 국경 전역에 장벽을 설치하고 멕시코에 비용 전가, 체포된 서류미비자를 추방 때까지 구금, 범죄전과 서류미비자 체포를 전담할 군대 구성, 서류미비자 보호도시(Sanctuary Cities)에 연방자금 지원 중단, 생체정보를 이용한 비자 추적 시스템 강화, 고용인 신분조회(E-Verify) 강화, 합법이민 축소 등이 골자다.
트럼프의 공약이 전부 현실화된다면 마치 독일 나치 시대와 같은 아수라장이 재현된다. 반면에 이런 측면도 있다. 공화당 후보로 선거를 치르려면 반이민 입장이 필요충분 조건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다른 공화당 후보들도 트럼프 못지않은 반이민 의지를 적극 천명했다.
막상 집권 후 공약을 현실화시키는 데는 두 가지 장벽이 존재한다. 절차와 재정이다. 어떤 정책은 의회를 통한 법안 통과가 필수다. 비록 공화당이 양원을 모두 장악했다지만 연방하원과 상원은 법안 통과의 절차가 다르다. 하원은 과반수 찬성만 있으면 된다. 상원은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 발언)가 1차 관문이다. 필리버스터를 차단하고 본회의 표결로 이관하기 위한 클로처(토론 종결 투표)는 60표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즉 상원에선 어떤 법안이든 통과에 최소 60표가 필요하다. 현재 공화당은 52석을 점유하고 있다. 과거 민주당이 다수당이었을 때 공화당은 필리버스터와 클로처를 무기로 법안 표결에 제동을 걸곤 했다.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연방정부는 현 상태로 가면 파산도 우려된다. 과연 트럼프의 이민 단속과 추방 정책을 추진할 만한 여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트럼프는 체포된 서류미비자를 추방 직전까지 구금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한 명을 추방하는데 평균 1만700달러가 소요된다. 연방정부와 계약을 맺은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사설 구금소에 지불하는 비용을 포함한다. 만약 11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서류미비자를 전부 추방하려면 총 1140억 달러의 추가 예산 편성이 요구된다. 더구나 심각한 적체 현상으로 추방 재판은 평균 2년 이상 진행된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분노한 시민들은 연일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외쳤던 구호의 하나가 “그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였다.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막말을 일삼은 트럼프를 용인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담긴 외침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트럼프는 합법적으로 선출되어 최소 4년간 행정부 수장의 역할을 할 주인공이다. 아직 임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그를 상대로 구호로선 선명하지만 정치적으론 불필요한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구체적인 정책 요구를 하는 게 더 지혜로운 방책이다.


트럼프는 또한 기축세력에게 빚진 게 없는 당선자다. 이번 미국 대선은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샌더스와 트럼프를 통해 표출됐다. 이런 조건은 향후 트럼프 행정부하에 오히려 변화의 진폭이 큰 역동적인 정치환경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으면 지독한 당파 대립으로 이민개혁이나 중요한 정책 현안의 해결이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 8년이 이를 웅변한다.
공약은 살벌했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 트럼프 측에선 현실을 고려하려는 조짐이 감지된다. 대선 직후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서류미비자 체포용 군대 편성은 무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가 실행한 서류미비 청소년 추방유예(DACA) 행정명령을 철폐하려던 트럼프는 최근 서류미비 청소년 구제안을 마련하겠다는 암시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 이민자 커뮤니티는 향후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트럼프를 상종 못 할 절대악으로 취급할 게 아니라 정치환경의 변동에 따라 유연한 전략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 요구된다. 그것이 오는 1월 20일에 취임할 트럼프를 대하는 이민자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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