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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무릎의 어휘

김 은 자 / 시인

몸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지체는 무릎이다. 무릎은 발바닥 이외에 세상과 접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태생은 무사이지만 시를 읊는 문인의 얼굴을 닮은 것이 무릎이다. 그 얼굴을 어떤 사람들은 복종이라 쓰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용기라고 읽는다. 어떤 이는 남자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계집이라고 칭한다. ‘무릎’ 하면 많은 사람들은 굴복을 떠올린다. 그것은 ‘꿇다’라는 동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타는 모래폭풍이 몰려올 때면 사막 위에서 무릎을 꿇고 모래폭풍이 멈추기를 기다린다. 모래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몇 날 며칠 끝까지 무릎을 꿇고 기다린다. 그때 무릎은 인내이고 용기이다. 그때의 ‘꿇다’라는 동사는 모색이며 기다림이다. 무릎은 선한 굴복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체 중에 하나다.
힘든 일을 견디고 해내는 것을 사람들은 ‘무릅을 쓴다’라고 쓴다. 잘못된 표기다. 그럴 때는 ‘무릅쓴다’라고 써야 맞다. 무릎과 무릅 사이의 하얀 거짓말. 굴복인지 아부인지 헷갈리는 세상처럼 본질과 허상 사이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무릎의 속성이다. 이상하다. 무릎은 꼿꼿이 세웠을 때보다 접혔을 때 힘이 있어 보인다. 나는 무릎의 애칭은 사슴의 목으로 지어 주었다. ‘사슴의 목’… 이라고 불러보면 가장 먼저 낙타의 무릎이 떠오른다. 무릎은 사막에서 전래된 전래 동화일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무릎을 접는 우산 취급한다. 접는 우산처럼 마음 속에 넣고 다니다가 편리에 따라 접고 편다. 무릎은 ‘꿇다’로 생각할 때 슬퍼진다. 그러나 그때, 한쪽 무릎을 탁! 쳐 보라. 그가 얼마나 경쾌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는가?
‘슬하(膝下)’라는 말이 있다. 무릎 슬에 아래 하를 쓰는 한자어다. 슬하는 부모의 보호를 받는 테두리를 말한다. 그런데 그 무릎 ‘슬(膝)’자가 심상치 않다. 무릎 슬(膝) 자는 고기 육에 검은 칠 옻자로 자식을 몸에 앉혀 키우다가 검게 된 곳이라는 뜻이다. 그처럼 무릎에는 희생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우리 몸에서 무릎처럼 근원과 본질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위는 없다.
시인 이재무는 ‘무릎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은, 없는 살림에 뻣뻣한 무릎이 문제였다고. 내키지 않은 일에 무릎 꿇을 때마다 여린 자존의 살갗을 뚫고 나오는 굴욕의 탁한 피를 느꼈다고. 그러나 범사가 그러하듯이 처음이 어렵고 힘들 뿐 거듭되는 행위가 이력과 습관을 만들고 수모를 겪다 보면 수치를 모르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굴욕은 변명을 낳고, 변명은 합리를 낳고, 마침내는 합리로 분식한 타성의 진리를 일상의 옷으로 껴입고 사는 날이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생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은 뼈아픈 질책을 던져 왔노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주먹을 어쩔 수 없다. 무릎은 세상을 굴절시켜 연골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수신제가 해야 할 부위였다.
무릎은 병의 측정기다. 자신보다 무거운 물건을 들었을 때 무릎은 즉각 반응한다. 무릎이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은 자신의 체중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무릎을 꿇으며 사는데 그 욕심이 병을 부른다니 파라독스여! 진정 무릎이 두려워하는 것들은 살찐 것들이었던가? 욕망, 이기심, 꿈이라고 부르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도 살찌고 기름진 것들일 때가 많다. 무릎은 도를 넘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다. 건강한 무릎은 말한다. 체중을 줄이고 욕망을 절제하라고. 무릎이 욱신욱신 열이 나고 쑤시는 날이면 자세를 점검하라고. 2017년 정유년에는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고 바른 자세로 걷자.
치료법은 이러하다. 살을 뺀다. 무거운 것은 들지 않는다. 한쪽으로 들지 않는다. 높은 신발을 신지 않는다. 전후좌우의 균형을 맞춘다. 다리를 꼬고 앉지 않는다. 보폭을 넓게 하여 체중이 쏠리지 않도록 한다. 나는 이렇게 읽는다. 욕망을 버린다. 욕심을 채우지 않는다. 감정이나 이성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높은 것을 꿈꾸지 않는다. 균형을 잃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는다. 모사에 넘어지지 않는다.
무릎이 편안해야 사는 것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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