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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후 4일 동안 벌어진 상황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고 격렬하다.

취임 하루 뒤인 21일 주요 도시와 전세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진'이 벌어졌다. 대체로 언론은 취임식 15만 명, 여성들의 행진 워싱턴 참가자 50만 명으로 보도했다. 같은 도시에서 열린 두 행사의 규모는 곧바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크기를 비교하는 샘플이 됐다. 이를 의식한 듯 같은 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역대 (취임식 참가자 중) 가장 많았다"고 브리핑했다. 이에 대한 비난이 일자 다음날 캘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방송에 출연해 '거짓말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변인은 대안 사실(alternative fact)을 제공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여성들의 행진은 트럼프의 당선 못지 않게 특기할 만하다. 대선 직후 페이스북에서 제안된 이 운동은 21일 첫 집회에서 이미 최근 10년래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양상으로 평가된다. LA 75만 명, 뉴욕과 워싱턴 각각 50만 명을 기록했으며 전세계 600여 개 도시에서 3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카고에서는 시위 군중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안전을 위해 행진을 취소했고 LA에서는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시위대 규모를 넘어섰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백악관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규모다.

이것으로 트럼프와 반트럼프의 시끄러운 대결은 취임 이튿날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집회에서 가수 마돈나는 "백악관을 폭파하고 싶다"고 외쳤고 뉴트 깅리치는 "우리는 좌파 파시즘의 부상을 목도하고 있다. 마돈나를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양 진영은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격렬하게 부딪쳤다.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다른 생각끼리 싸우라고 만든 제도니까 그렇다. 의회는 그 싸움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게 피 흘리며 권력 투쟁하고 숙청하는 것보다 여러 면에서 낫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 필리핀 기자와 교분이 있던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다. 1960년대 한국을 찾았을 때 기세가 넘쳤던 필리핀 기자는 30년 뒤 다시 방한해 침울한 표정으로 그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두 나라는 똑같이 독재를 했는데 왜 필리핀은 거꾸러지고 한국은 이렇게 성장했을까?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고민이었다. 최근에 어렴풋이 답이 보였다. 한국이 필리핀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독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저항이 거센만큼 권력자들이 긴장하고 더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하면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장의 동력이고 민주주의의 힘이다. 당장은 시끄럽고 어수선하지만 찬성과 반대가 시끄럽게 싸우는 것이 조용히 일사불란하게 잘못을 향해 가는 것보다 낫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날부터 전광석화처럼 자신의 공약 실천에 돌입해 오바마케어 폐기를 향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3일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연방공무원 고용·임금 동결 등에 서명했다.

트럼프의 움직임만큼 반트럼프 운동 속도도 무섭다. 23일 법률가 등이 대통령의 사업거래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시민단체는 같은 이유로 탄핵 서명과 함께 의회 압박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여성들의 행진 성공에 힘입은 풀뿌리 운동도 이어진다. 트럼프 내각 내정자를 비준하지 않도록 연방의원을 압박하는 운동이 오늘 35개 주 100여 곳 이상에서 열릴 예정이다. 4월 15일엔 트럼프의 세금보고서 공개를 압박하는 시위가 열린다.

에릭 가세티 LA시장은 여성들의 행진에서 이렇게 외쳤다. "두려워 말자. 누가 위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밑에서 무얼 하느냐가 중요하다." 트럼프도 취임사에 말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당이 우리 정부를 통치하느냐가 아니라 국민에 의해 정부가 통제되는 것이다."

시끄러운 건 두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것뿐이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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