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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이민자 때리기

1950년대 초반 미국에 '매카시 선풍'이라 불리는 광풍이 불었다. 공화당 소속 조셉 매카시 연방상원의원이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된 미친 바람으로 상원에는 '비미국적 활동조사위원회'가 설치돼 공산주의자 색출에 나섰다. 정계와 재계, 문화계, 노조, 공직, 언론계, 학계를 가리지 않고 휘몰아친 광풍으로 수백 명이 수감되고 1만 명 이상이 직업을 잃었다. 공직을 떠난 사람만 5000명이 넘었으며 영화계에서는 비공식 블랙리스트에 오른 300여 명이 해고됐고 찰리 채플린은 추방됐다. 심지어 2차대전의 영웅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공화·민주당 지도부, 육군 장성까지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에 시달렸다.

최근 중동 지역 7개국을 대상으로 비자 발급과 미국 입국을 일시 금지한 행정명령으로 시작된 외국인(을 포함한 이민자) 때리기를 또 다른 매카시 선풍이라고 부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명령으로 촉발된 불안감을 과민반응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이번 행정명령과 무관한 남미 거주자들의, 음주운전이나 마약 관련 전과가 있는 영주권들의 법률적 문의가 이어지는 것은 불안감이라고 부르기 충분하다.

이런 불안감은 입국 금지와 비자 발급 중단 대상국에 이집트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영주권자를 포함한 합법 거주자 가운데 정부의 생계지원을 받는 이들을 추방하고 지금까지 이들이 받은 정부 지원분을 재정 보증자들에게 청구하며 생계지원이 필요한 이들의 이민을 불허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 초안이 마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7개국 대상 행정명령이 이민자 때리기의 끝이 아니라 이민자 공격의 시작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과거의 매카시 선풍이나 현재의 이민자 공격에 공통점이 있다면 공포다. 안젤리나 졸리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난민과 이민자 배척에 반대하며 "우리의 책무는 공포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카시 선풍의 배후가 공산주의 공포였다면 최근 이민자 공격의 심리엔 테러와 실업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테러와 실업의 불안감을 현재 상황에서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불안감이 바람을 타고 대중적 공포가 되면 제어하기 어렵다. 일단 불이 붙은 공포는 뛰기 시작한 군중처럼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열기에 취한다. 목표점도 방향 감각도 잊는다. 태울 만한 것을 태운 뒤에야 진정된다.

매카시 선풍도 그랬다. 1949년 공산주의 중국의 등장과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아시아와 유럽의 공산주의 확산에 따른 미국내 적색 공포와 외국인 혐오증이 서서히 퍼지다가 매카시 선풍으로 폭발했다.

외국인이 테러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불안감 조성은 방치하면 언제 공포로 둔갑할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이 7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정명령 효력을 전국에서 잠정 중단하라고 명령한 것은 일종의 방화벽이 됐다. 애플 등 97개 IT 기업의 행정명령 반대 의견서 법원 제출과 전직 외교·안보 고위관료 10명의 행정명령 반대 성명도 작은 방화벽이다.

그렇다고 작은 방화벽에 안심할 수는 없다.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매카시 선풍의 불꽃은 의외로 사소했다. 매카시 의원은 당시 경력 위조와 금품 수수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이를 돌파하고자 공산주의자가 미국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적색 공포를 자극했다. 물론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불안감이 공포로 비화하는 것은 작은 불꽃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다.

방화벽 구축에 안 보이는 것이 있다. 의회다. 매카시 선풍 당시 민주당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의 주장을 방조하거나 이에 동조했다. 의회는 당시의 상황을 거울 삼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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