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오픈 업] 안으로 굽는 팔

수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는 말을 못한다.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몸짓이나 얼굴 표정으로 의사 표시를 할 능력도 없다. 자신의 내부에는 그러나 끓어오르는 많은 감정들이 있다. 표현이 어렵다보니 가끔은 짐승 같은 소리도 내고 고래고래 악도 쓴다. 멀쩡한 용모를 가진 42세의 백인 여성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20대 그녀는 얌전한 규수처럼 다소곳했었다. 자신을 여왕처럼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왔었고 가끔 무엇엔가 자극을 받으면 머리를 벽에 부딪치는 행동 때문에 소량의 항정신제를 쓰고 있을 때였다. 몇 달에 한 번씩 볼 때마다 행여나 약물의 부작용으로 몸이 비대해지지는 않았는지 반복적인 근육의 경련 작용이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방문의 주목적이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녀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도 했다. "Thank you" 나 "Fine"이 전부이기는 했었지만….

이제 중년이 되어 가는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최근 나를 방문한 것은 그녀의 어머니와 친절한 특수교육 선생님이었다. 그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란다. 80세가 가까워 오는 어머니는 몇 차례의 심장 마비 증세가 있었던 환자라 엘리자베스를 돌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를 특수 장애인 학교에 보내게 됐고 특히 그 곳에서 만난 한인 선생님 한 분이 큰 힘이 되었단다.

"이 분은 다른 선생님들과 달라요." 아버지를 잃은 후의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들을 때리거나 책상을 부수는 행동으로 나타냈었고 마음이 다급해진 선생님들은 약물을 바꾸거나 용량을 늘이라며 제2의 정신과 의사를 권했었나보다.



그런데 다른 의사에게 갔어도 좋아지기는 커녕 돈만 많이 들었는데 마침 한국인 선생님이 오셨으니 반가울 수밖에….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인사를 나누는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안도감이 돈다. 정신과 의사는 물론 언어 치료사 특수 교사 행동 치료사 간호사 등 수많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자폐증과 같은 발달 장애인들이다.

이들 전문인들이 팀을 이루어 일을 하며 환자는 물론 부모에게 마음의 평화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환자에게 부모의 일거수 일투족이 생명처럼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교사의 존재야말로 중요하기 짝이 없다.

"20 여 년 동안 엘리자베스를 치료해준 닥터 정처럼 한국인이라는 것 이외에 이 선생님은 마음이 따듯해서 좋아요." 정서불안 증세가 학교에서 많이 나타난다는 선생님의 보고를 들으며 우리는 항우울제를 시작해보기로 정했다. 부작용이 생기면 엄마는 집에서 선생님은 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약물 시작 후에도 수 주 간혹 2달 이상 기다려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과 용량을 서서히 늘여가야 한다는 것도 두 사람은 이해했다. 그리고 적어도 10명 중 6-7명에게는 탁월한 효과가 있음도 알렸다.

세 어른들이 이런 계획을 세우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을 여왕처럼 아끼던 아버지를 그리고 있는지 낯선 언어를 쓰는 두 동양인 여자를 가늠하고 있는지 거동이 불편한 엄마가 오랜만에 짓는 미소를 즐기고 있는지….

나의 옆에 갑자기 든든한 반석이 세워진 것 같아서 나의 마음도 가벼웠다. 훌륭한 한국인 교사들이나 사회사업가 가족 치료사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이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일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