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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북치는 할배'와 같이 산다

이정아/수필가

아이가 어릴 때 학예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인 'little drummer boy' 를 불렀다. 그때 소품으로 합창하는 아이들의 드럼을 준비해야 했는데, 엄마들의 아이디어로 캔터키 치킨의 패밀리팩을 사서 그 통을 북 대신 쓴 적이 있다. 치킨 통을 목에 걸고 젓가락으로 북치는 시늉을 하며 "파~람 팜팜 파~" "파~람 팜팜 파~" 노래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후로 25년이 흘러 우리집에 북치는 어른이 나타났다. 리틀 드러머가 자라서 어른 드러머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 아이의 아비인 내 남편이 북을 치니 엄밀히 말하면 '북치는 할배'인 거다. 교회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남편이 새해부터 팀파니를 연주하라는 명을 받았다.

순종을 잘 하는 남편은 지휘자 목사님의 말씀대로 팀파니를 쳤다. 새날의 희망을 표현하는 찬양에 둥둥 북소리는 효과가 있었다. 교인들의 반응이 좋자 요즘엔 팀파니 전담이 되었다. 남편은 양념으로 들어가는 북소리를 위해 팀파니 전공자를 찾아가 개인 레슨을 받고, 집안의 하이체어 두개는 팀파니 대신 연습용으로 곤봉 세례를 받는 중이다. 배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호기심 많은 남편은 팀파니가 익숙해질 때까지 식탁이건 책상이건 두들겨댈 것이다. 한때 남편의 무선통신 취미로 설치한 햄 수신기가 24시간 작동하여 소음의 고통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이와의 교신으로 "쯔 쯔 똔 똔" 기계음에 "탱고 델타 위스키(TDW) 오버" 콜싸인으로 늘 시끄러웠다. 집을 나와 일하러 회사에 가도 모르스 통신음이 이명처럼 따라다녔다. 그 후엔 트럼펫으로 20년 가까이 내 귀를 괴롭혔다(음악이 되기 전의 트럼펫 연습음은 소음일 뿐이어서).

평생 소리 공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귀가 불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의 팀파니 리듬은 그리 싫지 않다. 오히려 내가 설거지 할 때나 빨래 갤 때 박자를 맞춰주는 듯해 심심치 않다. 나이 육십을 가리켜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60년이란 세월 동안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도달하는 경지를 말하는데, 직역하자면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풀이하는 속뜻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하는 경지' 라고 한다.



세월이라는 불가항력인 시간의 힘이 만들어낸 깊이라고 해야할까. 공부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마침 남편과 내가 그 이순이란걸 앞서거니 뒤서거니 넘었다. 그래서 그런가 연습하는 북소리도 참을 만하고 남편이 연주하다 틀려도 그리 부끄럽지 않다. 음악 전공자도 아닌 할배가 최선을 다하면 됐지, 쓰임 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한다.

60 넘으니 내게도 남에게도 너그러운 관용의 여유가 생긴 것인가. 귀에 들리는 단순한 소리에만 너그러워질 게 아니라, 심안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순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이 많이 시끄러운 것도 따지고 보면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내 생각, 내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좁은 집안에 남편이 팀파니 들여놓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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