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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해되는 '치료'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

'사람을 죽여봐야 명의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표현을 과장한 말이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생의 'Do No Harm'이란 교훈에 어긋난다.

환자에게 절대로 해를 가하지 말고 치료하라는 말이 가능할까? 실제로 의료행위를 하다 보면 옳다고 믿었던 예전의 치료방법이 세월이 지난 후 환자에게 해를 끼쳤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몇년 전까지 여성들의 폐경기 증상을 덜어주기 위해 호르몬 대치요법을 사용했다. 근래에 호르몬제가 여성 장기에 암을 일으키고 혈액을 응고시켜 뇌졸중 등을 야기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호르몬 투여를 중지했더니 정말로 암의 발생률이 적어짐을 보았다. 그땐 호르몬 요법이 최선의 방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친 것이었다.

1950년 께부터 정신분열증을 치료하는 약이 나오기 시작해 지금은 시중에 열댓개나 된다. 그 약들은 분열증 환자들의 환청.환시.망상.돌발적 행동 등을 억제하는 효험이 있어 1970년대 말 정부 산하의 많은 정신병원들을 문닫게 했다. 수용소처럼 환자를 가두어 놓던 병원치료에서 가족들과 가까운 지역사회 속에 통상치료를 받는 방향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정신분열 증상인 대인관계 결핍 정서적 장애 인지능력 저하와 판단집중력 부족에는 약물이 거의 효력이 없어 만성 분열증 환자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정부와 지역사회의 무관심은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거리로 내쫓아 노숙자 신세로 만들거나 가벼운 범죄(거리 방황 노상방뇨 등) 때문에 감옥으로 보내졌다. 좋은 약의 출현은 정부예산을 줄여주는 큰 공을 세웠으나 대다수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겐 해를 끼쳤던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환자를 진료할 때 치료효과와 치료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요소를 항상 저울질해야 한다. 그 두가지 중 무게가 나가는 쪽으로 치료방향을 정해야 한다.

2004년 연방식약청(FDA)은 청소년들의 항우울제 사용에 대한 경고문을 발표했다. 우울증상이 있는 18세 이하의 청소년이 항우울제를 복용시 일부 환자가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보고였다(실제로 성공한 자살 케이스는 없음). 이 경고문이 나오자 의료소송을 염려한 의사들이 항우울제 처방을 꺼려 처방전수가 전년에 비해 20%나 줄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자살경향이 높은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는지는 몰라도 지난 15년 동안 계속 하락세를 보여온 청소년 자살률이 경고문 발표 다음 해에 급격히 높아졌다. 이 사실로 인해 지금 정신의학계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항우울제가 소수(100명 중 4명 이하)의 젊은 환자들에게 자살 충동이나 증세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항우울제의 혜택을 받고 있다. 우울증의 가장 위험한 증상인 자살행동은 항우울제가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하루 평균 15개 이상의 항우울제 처방을 끊고 있다. 언론매체들이 치료의 혜택보다 위험도 쪽에 보도를 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수의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보통 복용 초기에 자살충동이 일어나므로 빨리 의사에게 연락하면 크게 문제될 건 없다. 기원 전에 말한 히포크라테스의 훈시가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통할까? 이젠 선생의 'Do No Harm'대신 'Do at least harm'으로 고쳐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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