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 '문라이트', 빛을 머금은 한 편의 영상시

색채 미학으로 바라본 작품성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감독 최초로 작품상·감독상·각색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는 한편, 총 8개 부문 후보로 지명된 '문라이트'.

이미 130개 넘는 영화상 트로피를 차지하며, 배리 젠킨스 감독을 차세대 거장의 반열에 올려놨다.

이 영화는 범죄가 들끓는 미국 마이애미 빈민가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 대신, 마약에 취한 어머니 대신, 동네 마약상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자라는 어느 동성애자 소년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과감한 빛과 색(色)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영상은 한 편의 '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젠킨스 감독의 독특한 색채 미학을 담아낸 '문라이트'의 영상을 들여다봤다.

영혼을 비추는 파랑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이하 '파랗게 보인다')'.

원작 희곡 제목처럼 '문라이트'는 푸른색이 지배하는 영화다. '파랗게 보인다'는 미국 내 흑인의 삶을 그려 주목받아 온 마이애미 출신 극작가 타렐 앨빈 맥크래니의 자전적 성장담.

맥크래니처럼 마이애미 리버티시티의 가난한 공동주택 단지에서 자란 젠킨스 감독은 각색을 통해 원작에 자신의 이야기를 보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극의 배경이자,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우범지대로 꼽히는 이 지역에 세트를 짓고 촬영을 감행했다. 그러나 마이애미가 마약에 찌든 칙칙한 도시인 것만은 아니다. 사방에는 연중 야자수가 흔들거리고, 빈민가의 건물들은 눈부신 직사광선 속에 파스텔 톤으로 빛난다. 플로리다주립대 영화학과 동창으로, 전작부터 함께한 촬영감독 제임스 랙스턴과 젠킨스 감독. 두 사람은 이 "아름다운 악몽 같은"(젠킨스 감독) 도시에서 극사실주의적인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문라이트'를 "한 편의 열병이자, 시"(젠킨스 감독)로 완성하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 파랑은 그저 색깔이 아니다. 소년들의 검은 피부 아래 감춰진 영혼을 드러내는 달빛 같이, 기댈 곳 없던 아이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에게 등불처럼 길잡이 노릇을 해 준다. 그를 조건 없이 품어 주는 존재들은 어김없이 푸른색이다. 이 법칙은 오프닝신부터 적용된다. 자메이카 가수 보리스 가디너의 '에브리 니거 이스 어 스타(Every Nigger is a Star)'를 들으며 자신이 관리하는 구역에 나타난 마약상 후안(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 그가 하늘색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하늘색 책가방을 매고 도망치는 샤이론의 작은 뒷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우연히 샤이론을 도와준 후안은 그날 이후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죽음과 비극의 빨강

어머니 폴라(나오미 해리스)의 마약 중독이 심해지면서, 샤이론의 집에는 점점 붉은색이 침투한다. 마약에 취해 어린 아들에게 분노를 내지르는 폴라의 방에서는 선명한 붉은색이 번져 나온다. 어머니의 방치 속에 자라는 샤이론의 세상은, 이제 거의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극 중 폴라는 원작자 맥크래니와 젠킨스 감독의 실제 어머니를 토대로 그린 캐릭터. 미국의 마약 문제가 극에 달했던 시절, 젠킨스 감독의 어머니는 가까스로 마약을 이겨 내고 살아남았지만, 맥크래니의 어머니는 마약 중독으로 인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세상을 떠났다.



아그파필름 룩을 재현한 청록

'문라이트'는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지만, 샤이론의 성장 단계에 따라 구분되는 세 개의 챕터에 각각 개성이 다른 필름의 질감을 주려 했다.

컬러리스트 알렉스 비켈에 따르면, 유년기에 해당하는 첫 챕터는 따뜻한 느낌의 후지필름, 성인 시절을 그리는 셋째 챕터는 코닥필름의 질감을 빌려 팝적인 색감을 살렸다. 가장 도드라진 인상을 남기는 건 열여섯 살 샤이론(애슈턴 샌더스·사진)이 등장하는 두 번째 챕터. 청록색 색감이 특징인 옛 아그파필름의 질감을 살렸는데, 샤이론이 상처 입은 얼굴을 화장실 거울에 비춰 보는 장면에서 특히 그 효과가 살아난다.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과 슬로모션이 더해져, 폭력으로 산산조각 난 그의 내면을 극대화해 표현했다.

가장 아름다운 검정

'문라이트'에서 눈에 띄는 건 흑진주처럼 빛나는 등장인물들의 피부 톤이다. 젠킨스 감독은 마이애미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기 추억 속 얼굴들을 떠올리며, 매 장면 강렬한 명암 대비와 윤곽을 살리는 과감한 조명으로 풍부하고 아름다운 색과 질감을 끌어냈다.

수면 아래서 포착한 바다의 물빛

"기존 영화에서 샤이론 같은 캐릭터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단지 내러티브의 중심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유색 인종 남자가 바다에서 소년을 안아 올리는, 이런 단순한 순간조차 카메라에 비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인물들은 누군가의 내밀한 삶에서 끌어낸 이들이다. 그들이 빚어내는 일상적인 장면들을 결코 전형적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젠킨스 감독의 말이다.

후안이 흡사 세례를 하듯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수면을 넘나들며 넘실대는 파도의 물빛까지 담아낸다. 이 순간 행복에 겨운 샤이론의 눈에 비친 풍경 그대로. 샤이론이 자신의 텅 빈 집에서 홀로 물을 끓여 목욕하는 장면은 이 순간과 정확히 대조를 이룬다. 친어머니보다 마약상에게 의지해야 하는 아이의 삶은 고독하고도 서글프다.



나원정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