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사순시기의 과제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성크리스토퍼성당
오늘날 악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과거의 미신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악마를 믿지 않으면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결과에 빠지게 된다. 물론 하느님을 믿지 않는데 악마를 믿는다는 것은 비극이고 대재앙이다. 음산하고 우울한 주제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악마의 존재를 믿는 것은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악마를 이기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혹을 당하신 곳은 광야였다. 인간의 약함에서 오는 극한의 상황을 접하게 되는 장소이다. 광야는 외적 장소를 넘어 우리 안에서도 발견된다. 신앙의 열정이 끊어 오를 때는 하느님을 섬기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맛보는 듯하지만 그분이 광야의 메마름이라는 희생을 요구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한다. 십자가를 맞이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다고 그래서 좀 더 영적인 힘이 생길 때까지 며칠만이라도 연기해 주셨으면 하고 회피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유혹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지는 피할 수 없는 위기이자 신앙에 응답해야 할 '때'이다. 이는 예수님도 겪으신 일이다. 그분도 번민에 휩싸여 수난과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도 부르짖으며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치워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은 유혹과 위기의 시간을 당신의 '때'로 만드셨다. 복음에서 '때'는 당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시간을 말한다. 예수님은 사탄이 당신 앞에 놓는 유혹의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드러내며 맞서셨다. 그래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빵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물질적 한계 상황을 대표한다. 또 우리는 자주 하느님께 지나친 기대로 자신을 위한 요청만을 하다가 들어지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 대신 자기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사순시기는 이런 유혹을 마주하고 유혹자의 도전을 정면으로 맞서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일깨우는 때이다. 시험을 이기는 은총의 때요, 자비의 때이다. 우리의 승리와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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