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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겉옷을 벗고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정신심리클리닉 원장
정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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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3/1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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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러닝셔츠 한 묶음을 샀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여섯 개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한 참 지난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고 입으려고 보니 아뿔싸 겉봉에 2XL라고 적혀 있는 것 아닌가! 누군가 중간 치수 칸에 잘못 놓고 간 모양이다. 정신 놓고 사는 나를 원망해야 했다. 바꾸러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그냥 입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어깨가 드러나고 아랫단은 엉덩이 아래에서 출렁거렸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였다. ‘그래 옷 춤이 길면 양복바지 밖으로 빠져 나오진 않겠지.’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빨래를 하려던 아내가 옷 바구니에서 이상한 러닝셔츠를 보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오매, 이제 옷도 제대로 사 입지도 못하네.” 하며 한마디 했다. 내 잘못인 지라 옹골지게 몇 주간 입고 다녔다. ‘밑단이 빠져 나오지 않으니 좋네 그려’하면서.

딸이 Best Buy 에 가자고 하였다. 러닝셔츠만 입고 있던 나는 따뜻한 봄 날씨에 반소매 옷을 입고 주섬주섬 따라나섰다 도착해서 주차장을 걷고 있는데 아내가 또 한마디 했다. “주리야. 아빠 옷 입은 것 좀 봐라. 속 옷이 저렇게 보기 싫게 삐져나와 쓰겠느냐” 하니 딸까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러닝셔츠가 소매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다. ‘이게 무슨 대수라고’ 하며 속으로 밀어 넣어 보았지만, 다시 흘러내렸다. 근무 중에는 긴소매를 입어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생각지 못한 날씨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다.

현대인들은 보이는 것이 중하다 생각해서인지 내면보다 겉치레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일례로 옷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명품을 찾기도 한다. 대체로 명품이 디자인이나 재질이 좋고, 착용감도 편하다고는 하지만 고가여서 모든 사람이 다 사 입을 수는 없다. 내가 볼 땐 브랜드값이지 일반 제품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데 말이다.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과시욕이 느껴져 가끔 씁쓸해진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사람이 명품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어머니의 고쟁이는 딸이 입어도 겉옷은 물려 입지 않는다. 우리 집에도 아이들이 크니
발 치수가 비슷해서 아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양말이 섞여 아무거나 신기도 하고, 똑같은 속옷일 경우 아무거나 갖다 입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겉옷을 입으라 하면 질색자망을 한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겉옷이 있다면’하고 생각해보았다. 어떤 이는 체면이란 겉옷을, 어떤 이는 학력, 직업, 종교라는 겉옷을 걸치고 살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두르고 있는 겉옷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려 한다. 그래서 내면은 어떠하든 속옷보다 겉옷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 내 옷은 멋부리고 말 것도 없이 두 벌뿐이었다. 어른이 되어 내 손으로 돈
을 벌어 사 입을 수 있는 지금은 그때보다 많아져서 목적과 장소에 걸맞게 겉옷을 바
꿔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환경에 따라 적응하여 색깔이 변하는 카멜레온처럼 말이다. 직업에 맞춰 살려니 스트레스 많고 갖춰야 할 것도 생긴다. 단순한 겉옷을 입을 때는 마음도 순수했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나 겉옷이 많아질수록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속마음을 나눌 친구는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용감하게 냇가로 함께 뛰어들던 깨댕이 친구들이 그립다. 물놀이 하다 지쳐 냇가 모래사장에 함께 드러누워 뭉게구름을 바라보던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 탕 속에서 장난치면서 볼 것 다 보고 무슨 말이든 지껄여도 화내거나 비판하지 않던 내 친구들이 그립다.

오늘날 사회는 속마음을 감추고 사는 것이 다반사이다. 서로를 좀처럼 믿지 못하기 때
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다 보니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왜곡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신념체계는 은연중에 밖으로 뚫고 나와 점진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믿지 못하게 만든다. 마음의 상처는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억울함, 열등감, 자괴감, 분노, 배신감 등이 마음의 음지가 되어 상처로 곪게 된다. 그럴수록 속마음을 짜내어 옆 사람과 나누어야 하는데 더 화려한 겉옷으로 곪은 상처를 꽁꽁 싸맨다.

환자들의 상담 치료는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겉옷을 찢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깊을수록 그것을 싸고 있는 겉옷이 강해 밖으로 꺼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룹 상담이 효과가 있다. 처음 그룹상담에 참여한 사람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속마음을 표출하는 것은 큰 모험이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듣기만 하고 절대 자기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석 횟수가 많아질수록 속 상처들이 한번 삐쭉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 자신도 놀랄 만큼 말이 많아진다. 상처는 마음의 겉옷을 찢는 순간 상처도 비밀도 아니다. 후련한 속마음을 털면 타인과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고 하루가 행복해진다. 반면에 속마음 상처는 유령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사람 만나거나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유령이 따라 다닌다. 하는 일도 되지 않고 인생이 즐겁지 않다. 결국 우울증으로 앓게 되어 더 큰 올가미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러닝셔츠가 밖으로 흘러나와야 가족으로부터 관심을 받듯, 우리 속마음도 살짝 드러내어 내 이웃과 소통을 할 때, 서로 이해와 공감을 나누지 않을까 싶다. 설령 도움이 되지 못한 관계일지라도 넉넉한 아량으로 남의 아픔을 감싸주고 이해와 공감으로 보듬어 주는 삶이 자신에게도 플러스 인생에 되는 길이 아닐까?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정신심리클리닉 원장
정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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