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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도움 얻어서라도 일왕·총리, 생존자 만나 사죄토록”
애틀랜타 방문한 인권활동가 실비아 유 프리드먼
그녀가 ‘인권계 거목’ 카터·투투 카드 꺼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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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3/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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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처럼 보였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진다. 축구에 국한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일전은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다. 그런데 지고만 살아온 듯 보여도 전후 한일 과거사는 단 한번도 한국이 진적이 없다. 위안부 소녀상 시계는 결코 멈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종료 휘슬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이토록 장구한 세월에 걸쳐 해결될 기미가 없는 데 대한 분통함 때문일까, 아니면 쓸쓸하게 유명을 달리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일순간 떠올랐기 때문일까. 애틀랜타 강연을 위해 미국을 찾은 인권활동가 실비아 유 프리드먼씨는 강연 초입에 북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이내 굵직한 눈물 방울을 떨꿨다. 장내에 적막감이 흘렀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이해할만한 눈물의 의미를 애써 되묻는 이는 없었다.

지난 18일 브룩헤이븐의 한 카운티클럽에서 열린 초빙강연을 전후해 실비아 유씨와 사이드 인터뷰를 나눴다. 유씨는 “지미 카터, 데즈먼드 투투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일본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 인권평화의 거목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전 세계 인권 상황 개선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들을 통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이끈다는 다소 요원한 듯 해도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전략을 유씨가 구상한 것이다. 그녀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시하다 보니 이런 생각에 착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로 마치 남의 일인냥 손 놓고 있는 한국 외교부를 대신해, 외국 주류 인사의 접근성이 어쩌면 복지부동 철밥통들보다 더 탁월할지도 모를 미주 한인과 남아공 한인들의 어프로치 방법과 비전,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됐다. 정부가 못한다면 풀뿌리 민초들이 나서는 건 세상사 이치다. 애틀랜타 민권센터가 소녀상 건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약간은 풀죽은 듯 숨고르기를 하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준비위원회’가 귀담아 들을 법했다.

한국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해 수많은 단체들이 위안부 문제에 천착하지만, 국외 접근성과 현지성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 이음새를 튼실한 정부 외교력으로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유독 이에 관한한 한국 외교부는 답보 상태다. 독도, 일본의 국정 교과서 왜곡엔 즉각 성명을 내놓는 외교부가 위안부만큼은 민간 차원의 일이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가만 뒀다간 독도도, 황금어장도 몽땅 돈받고 팔까봐 겁난다는 우려도 나올 만하다. 이에 더해 외교 수장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진일보로 규정한다. 금전적 보상이라는 한정적 개념이긴 해도, 공식 외교문서에 담긴 일본의 (전범)책임 인정이라는 논리다.

실비아 유씨는 윤 장관 의견과 관련해 “호주와 동티모르, 태국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침략과 위안부 강제동원으로 부터 피해를 봤던 12개 나라의 생존자들은 돈보다는 사과를 원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성(dignity)’과 ‘잘못의 인정(recognition)’을 먼저 원하고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가 먼저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때마침 준비위가 애틀랜타 태생의 전직 대통령이자 퇴임 후 ‘인권외교’로 명성을 떨친 지미 카터가 설립한 카터 센터를 소녀상 건립예정지 여러 곳 중 하나로 물색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도 들린다. 일본의 방해공작이 실재하는데, 이 같은 ‘인권 거목 활용 전략’이 인터뷰로 공개되도 될까. ‘카터는 인권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카터가 일본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어디선가 우문현답이 들려왔다.

유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캐나다로 이민갔다. 밴쿠버에서 자라던 유년 시절엔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사실상 문외한이었다는 그녀는 2001년 당시 팔순의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덕 할머니를 만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아, 우리에게도 홀로코스트 같은 게 있었구나. 상대적으로 난 특권(privilege)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어려움 없이 교육을 잘 받으며 자라온 것이 미안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연민을 갖게됐어요.”

학업을 마치고 저널리스트로 일하게 된 유씨는 강도높은 업무환경이 되풀이됐지만 인권문제에 관한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했다. 으레 이민자사회가 그러하듯, 아시안으로서 그녀는 주로 아시아쪽 소식을 맡게됐는데 공교롭게도 인신매매 사건을 다루게 되면서 위안부와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성매매촌에 팔려나가는 동남아 소녀들의 이야기, 그들이 받는 박해와 핍박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점을 발견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죠. 미래 세대를 위해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실비아 유씨는 그 일을 계기로 바쁜 시간을 쪼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강연도 다니게 됐다. 이 무렵 홍콩의 방송사에서 일하던 그녀는 홍콩과 중국 등지에서 고교생 등 주로 젊은층을 대상으로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강사로 발품을 팔았다. 이날 애틀랜타 강연을 마친 뒤에도 차타누가의 컬리지 2곳에서 강연을 더 하고 오는 26일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언제쯤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으로 보는지 물었다. 시기를 예단하기 보단 ‘우리의 할 일’에 좀더 주안점을 두겠다는 답변이 나왔다. “독일의 빌리브란트 총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죄하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총리의 사과로 인해 상흔이 치유된다고 말했어요. 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을 직접 맞대고 사과하면 할머니들이 이제는 됐다고 말하는 장면을 꿈꾸죠. 그러기 위해선 정치인 출신의 거물급 민간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이 먼저 움직이며 각국 정부들을 견인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녀는 홀로코스트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며 독일 총리의 사과를 가져온 과정을 공부한다. “홀로코스트가 어떻게 교육되어졌는지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그 방식 그대로, 규모는 작지만 활동가 그룹들이 곳곳에서 왕성하게 교육하고 TV, 다큐, 책, 미디어 기사를 통해 알리면 미래세대에게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변화에 따른 혜택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일본 차세대에도 적용된다. “캐나다에서 만난 일본 유학생 중에 이런 역사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이 다큐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거나 소리 내 울었어요. 일본 정부가 지난 역사의 잘못을 사죄하면 해외 거주 일본인 2,3세대가 혜택을 본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마이크 혼다 전 의원처럼 일본계 미국인 2,3세대를 최대한 끌어모아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이죠.”

다음은 일문일답.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태어나 두살 때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 2001년에 위안부 피해자 김순덕 할머니를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 할 때다. 아, 이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와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구나, 우리는 잘 교육받았고 어려움 없이 자라온 것을 느끼며 미안해졌고 그들에 대한 연민을 갖게됐다.

이후 저널리스트로서 일을 하게 됐는데 매우 고되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주로 아시아 소식을 맡게됐고, 인신매매를 다루게 되면서 위안부에 대해 공부하고 리서치를 하게 됐다. 인권에 관한 관심이 커 계속 공부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매매촌에 팔려나가는 소녀들의 이야기, 인종차별 등에 대해 알게됐다. 일본이 종군위안부를 운용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의심의 여지 없이 학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무척 큰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미래 세대를 위해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을 갖게됐다. 홍콩과 중국에서 고교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는 강연을 다니게 됐다. 차타누가의 학교 2곳에서 역시 강연을 할 예정이다.

홀로코스트가 어떻게 교육되어졌는지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있다. 그 방식 그대로, 규모는 작지만 활동가 그룹들이 곳곳에서 왕성하게 교육을 하고 TV, 다큐, 책, 미디어 기사를 통해 알리면 미래세대에게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홀로코스트가 그렇게 알려져왔다.

-차타누가에서도 강연을 한다면 언제까지 미국에 있나.

“26일까지 미국에 있을 것인데 다시 오게 될 것으로 본다. 이 토픽과 관련해 더 해야할 일들이 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을 전수하고 싶기 때문에 사람들을 트레이닝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어디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위안부는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라들마다 차이가 있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기림비를 반대하지 않았다. 위안부 소녀상도 기림비의 일종이다. 위안부는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례이기 때문에 일본이 사죄하고 반성하는 게 온당하지만 그러질 않고 있다. 생존자가 아직 있다.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 내 생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나야 하며 어린 세대가 알 때까지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생존자들이 죽고 난 뒤에는 소용이 없게된다.”

- 언제 위안부 이슈가 완전히 해결될 것으로 보는가.

“독일의 빌리브란트 총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죄하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총리의 사과로 인해 상흔이 치유된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을 직접 맞대고 사과하면 할머니들이 이제는 됐다고 말하는 장면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인 출신의 거물급 민간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이 먼저 움직이며 각국 정부들을 견인해야 한다고 본다. 호주와 동티모르, 태국까지 일본의 침략과 위안부 강제동원에 영향을 받았던 12개 나라들의 생존자들이 함께 일본인들과 대면해 사과를 받도록 정치인 출신 인권활동가들이 움직일 것이다. 생존자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다. 생존자들은 ‘인간으로서 존엄성(dignity)’과 ‘잘못의 인정(recognition)’을 원한다. 매우 진실한 사과가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현실적 전략은.

“남아공 인권평화의 거물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영향력 있는 이들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면 일본 정부가 마음을 돌려 위안부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하는 점을 주시하다 이런 생각에 착안하게 됐다. 그는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카터와 같은 인물을 만나서 위안부 소녀상과 전범국 일본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현실을 설명하고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 외조부가 A급 전범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극우주의자이고 국수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일왕과 일본 총리로부터 사과를 이끌려면 이런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캐나다에서 만난 일본 유학생 중에는 이런 역사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배우지 않는다. 그런데 다큐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거나 소리 내 울었다. 일본 정부가 지난 역사의 잘못을 사죄하면 해외 거주 일본인 2,3세대가 혜택을 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이크 혼다 전 의원처럼 일본계 미국인 2,3세대를 최대한 끌어모아 함께 움직여야 한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향후 소녀상 건립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나.

“놀랍게도, 그런 합의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을 닫고 퇴장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크게 이슈가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내용을 보면 상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인권운동단체들로서는 좋지 않은 여건인 듯 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녀상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어긋난다고 했고,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는 합의서 사본을 들어보이며 소녀상 건립 취소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안한다.

“맞다.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려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데미지가 있다. 어느 면에서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를)포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일본이 1965년 한일협정에서 양국간 모든 문제를 묻기로 했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온 사실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국제법상 (정부간 협의와 별도로)개인은 클레임을 할 수 있다. 이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가그룹이 꾸준히 활동을 벌여나간다면 각국 정부에 충격 요법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애틀랜타 민권센터가 태스크포스(평화의 소녀상 건립준비위원회)와의 합의를 깨고 소녀상 건립 계획을 취소했는데.

“들었다. 밝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사에 더 가까이 가야 하고 알려야 한다. 진실을 알리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쉽지 않다. (민권센터의 약속 번복은)매우 슬픈 결정이다.”

-강연 영상에 일본 크리스찬 커뮤니티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를 돕고 정부를 대신해 사과하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신앙적 동기에서 비롯됐나.

“난 독실한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랐다. 믿음은 내 모든 일에 첫번째 동기부여를 한다. 이사야 61장 1절을 가장 좋아하는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이라는 말씀이 특히 좋다. 하나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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