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홈 LA NY Chicago SF DC Atlanta Montgomery Texas Seattle San Diego Vancouver Toronto 한국중앙일보
> 뉴스 > 오피니언 > 외부 기고 칼럼
기사목록|  글자크기
[노세웅 독자기고]이병기 회장을 추모하며
윤동주 문학회 노세웅 이사장
  • 댓글 0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3/20 08:29
  • 스크랩
이병기 회장이 이 세상을 떠난 날, 온 동네의 나무와 숲도 슬퍼서 몸부림 치고 소리 치며 울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야, 믿을 수가 없어” 하며 그가 떠난 하늘을 보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첫 시집 <은천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석향 이병기’라고 했습니다. 먼 훗날 사람들이 ‘가람 이병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합니다. 실버스프링을 ‘은천리’라고 하며 시집 제목도 은천리라고 재미있게 붙혔습니다.

석향 이병기 회장이 지난 목요일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인회 이메일과 윤동주 카톡방에서는 애도의 글이 올라오고 확인 재확인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겠지요. 지난 주 토요일 윤동주 문학회 모임에 미소 띈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해 했더니, 박혜자 총무가 급성 췌장암이라고 위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확실치 않다고 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헛소문이겠지 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건강한 모습이었고 활동적이었기에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외유내강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친절하고 조용조용히 말하지만 그의 마음은 강철같이 강했습니다. 그는 약한 모습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쁘다고 회장을 사양하다가도 ‘다른 대안이 없으면 할 수 없지요’ 하면서 회장직을 맡아서 가장 훌륭하게 회장직을 수행하고 후임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는 회장직을 열심히 잘 수행했습니다. 메일과 이메일, 그리고 카톡까지 삼중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연락을 하도록 했으며 각각 담당부장을 임명해 철저하게 하면서 “한 사람도 몰라서 참석 못 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리더십이 뛰어나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문학작품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서 처음에 다른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먼저 자기 작품 중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작품을 내놓고 토론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춤을 추러 나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나갑니다. 그리고 형편없는 춤 솜씨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나도 저만큼은 할 수 있어 하면서 다들 따라 나온다고 합니다.” 모두 참 좋은 방법이라고 줄줄이 습작을 가지고 와서 서로 조언을 하는 아름다운 모임이 되었습니다.

의사로서도 열심히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번은 후배가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그 후배가 워싱턴에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 궁금했던 차에, 닥터 이병기 회장의 환자로 의사를 만나러 갔다가 필자 소식을 전해 듣고는 연락을 준 것입니다. 그 후배는 의사나 약을 아주 싫어하며 감기도 걸리지 않는 강철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가 “의사라고는 이병기 박사 외에는 의사로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후배를 만나기 전후에도 그를 칭찬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석향 이병기 시인도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었기에 주변에서 “인생 후반부를 일에서 해방돼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생을 마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면 “환자들 때문에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 길다면 백 살이라지만 얼마나 더 살지 아무도 모릅니다. 갑자기 떠나는 것보다 어느 정도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평생 고생한 자기 자신을 위해 보상해주는 시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석향 이병기 회장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하다가 하늘나라로 갔으니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석향 이병기 회장님,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윤동주시인도 만나보고 가람 이병기 동명이인도 만나 보시고 여러 훌륭한 사람들 만나서 행복하게 살다가 우리가 가면 반갑게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스크랩

 

인기건강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