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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일본에게 내어준 도자기 나라의 자리

일본이 한국에 끼친 죄상은 나라의 주권과 어린 소녀들의 정조만 짓밟은 게 아니다. 임진왜란을 다른 표현으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른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국보급 문화재 강탈 및 수탈이 행해졌다. 임진왜란 당시 옛 신라, 백제왕조 및 조선왕들의 능을 파헤쳐 귀중한 부장품(副葬品)은 물론 값비싼 유물들을 훔쳐가는 전담 부대를 만들어 6만7000 점의 문화재를 도둑질해 갔다. 그 도난당한 문화재의 상당 부분이 일본 나라현에 소장되어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를 배우려면 나라현으로 가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다.

그중의 하나가 조선에서는 개밥그릇 정도로 천히 여기던 막사발이 있는데, 일본으로 건너가 굉장히 신분이 상승하여 일본국보 2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훔쳐가는 일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니까 아예 도자기 기술자들을 납치해 갔다. 일본 번주(蕃主)들에게 조선 막사발 찻잔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16세기 당시 유명한 다완(茶碗) 하나에 쌀 1만 석에서 5만 석의 값어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 무렵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 지방에서 그릇을 굽던 이름 모를 도공 한 사람이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달래면서 한글로 써내려간 10줄의 시가 적힌 찻잔이 얼마 전 공개되어 화제가 됐다. “개야 짖지 마라. 밤 사람이 모두 도둑인가? 자목지 호고려(일본사람이 조선사람을 부르던 칭호)님이 계신 곳에 다녀올 것이다. 그 개도 호고려의 개로다. 듣고 잠잠 하는구나.” ‘한글묵서다완’이라는 찻잔이다. ‘하기’는 임진왜란 때 강제로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 도공의 후손 이작광, 이경 형제가 정착한 곳이다. 이들 형제는 가마를 만들고 일본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조선의 막사발 모양의 찻사발을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조국에서는 천민취급을 받고 고생을 하던 이들에게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와 동급의 지위로 우대했다. 삶은 풍요롭게 됐지만, 고향에 대한 미련은 떨칠 수가 없었다. 이들의 뛰어난 조선의 도자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의 도자기 산업은 일본 경제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유럽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하던 청화백자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도자기 생산에 문제가 생겼다. 이 틈을 타 일본인들이 새로이 개발한 화려한 색깔의 채회자기가 유럽인의 눈길을 끌면서 도자기 왕국의 주도권이 바뀌게 된다. 중국의 자기는 아랍에서 사용하던 코발트를 접목시켜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낸 하이테크 제품이었다. 유럽과 동남아로 수출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교역국가 상호간 교류의 길을 터놓아 세계무역의 장을 여는데 이바지 했다. 도자기를 영어로 차이나라고 하는데 이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한국도 송나라로부터 청자 제조 기술을 습득해 고려청자를 만들어 내므로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첨단 도자기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종주국인 중국으로부터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의 도공들의 삶은 수탈과 고생을 일삼으며 힘든 삶을 살아야하는 천민이었기 때문에 기술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를 꺼려해 50여 년 전까지 청자의 맥이 끊기기까지 했다. 백자(白磁)는 천년 동안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 했던 하이테크 제품이다. 우주왕복선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부품이 자기 타일 이다. 그동안 일본에게 내주었던 도자기 왕국의 자리를 다시 찾고 하이테크 산업과 연결시켜 경제부흥 발전으로 대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태원/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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