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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죽음과 소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는 1817년 독일 시인 마티아스 클라우이우스의 시를 가사로 하여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adchen)을 작곡했다. 가사 내용은 소녀와 죽음 사이에 나누는 대화다.

“(소녀) 지나가요! 오, 지나가세요!/ 가세요. 뼈만 남은 무서운 분!/ 나는 아직도 젊단 말이에요! 가세요./내게 손을 대지 말고/ 내게 손을 대지 말고. (죽음) 내게 손을 주렴, 너 아름답고 부드러운 몸!/나는 네 친구/너를 벌을 주려고 오지 않았다./기분을 내렴./ 나는 무섭지 않다./ 너는 부드럽게 잠을 잘 것이다./ 내 품안에서.“

1824년 삼기 매독이란 진단을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슈베르트는 ‘죽음과 소녀’라는 가곡을 이용하여 현악 사중주곡(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으로 만들었다. 삼기 매독이란 매독 균이 두뇌까지 침범했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입원까지 했었다. 당시 매독 말고도 그의 삶은 비참했다. 악보 출판사가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돈이 없어서 생활은 극히 곤궁했고 모처럼 시도했던 오페라(중세기를 배경으로 한 ‘Fierabras’)는 공연에 실패했다. 그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남자를 생각해 보세요. 절망은 사태를 완화시키는 대신 악화시키지요. 가장 밝은 희망을 지녔던 인간에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사랑과 우정을 지닌 자에게 고통만 돌아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열은 빨리 소멸되어버리니 그는 정말 불행한 인간이 아닐까요.”라고 적었다.

이 현악 사중주곡의 제2악장에 가곡의 멜로디가 나온 다음 그 변주곡이 계속되기 때문에 ‘죽음과 소녀’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죽음이란 주제는 4개 악장에서 모두 느낄 수 있다.



1994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원래 연극이었던 것을 각색한 ‘죽음과 소녀’란 미스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시고니 위버, 벤 킹슬리, 스튜어트 윌슨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했다. 금방 독재체재를 벗어난 남미의 한 나라를 배경으로 고문의 후유증을 다루고 있다.

한때 시민운동가였으나 지금은 한 변호사의 아내로 가정주부가 된 폴리나(위버)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정전 상태에서 폴리나(위버)는 절벽 위에 있는 집 안에서 초조한 가운데 서성거린다. 남편(윌슨)은 폭우로 난처해진 이웃을 돕기 위해 낯선 남자, 미란다 박사(킹슬리)를 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온다. 그는 유쾌하고 붙임성이 있지만 폴리나는 그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파시스트 정권의 일원으로 자기의 눈을 가린 채 몇 주일동안 고문을 하고 강간한 인간임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미란다 박사를 구금한 후 사실을 자기 손으로 밝히려 한다. 폴리나는 심리적 억압과 음울한 기억 사이에서 고통을 받는 사이 남편은 복수하려는 아내와 현실적인 법 사이에서 고민한다. 한편 미란다 박사는 부부가 확실하지 않은 과거를 들춰내려고 할 때 구속되어 고통을 견뎌야 한다.

폴리나가 고문을 받는 장면에서 현악 사중주곡 ‘죽음과 소녀’가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한 음악회에서 이 음악의 연주가 시작되자 폴리나와 미란다 박사의 눈이 서로 마주치면서 영화는 암전된다.
오스트리아의 상징파 화가 에곤 쉴레는 한동안 17세인 월리 노이친이란 젊은 여인과 동거했다. 그녀는 한때 화가 클림트의 모델이었고 애인이었다. 그녀는 쉴레를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돌보며 모델 역할도 했다. 누드 상태로 야한 포즈를 취하라는 요구까지 들어주면서.

그런데 쉴레는 1914년 비엔나 교외의 스튜디오에서 길 건너편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에디트란 젊은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중산층에 속한 개신교도였다. 자신은 유태인이어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던 쉴레는 다음 해 그녀와 결혼해 신분상승을 꾀했다. 그러면서도 월리와의 관계는 계속되길 원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을 들은 월리는 즉시 떠나 다시는 그를 보지 않았다. 당시의 심정을 이 화가는 ‘죽음과 소녀’(1915)란 그림으로 표현했다.

흰 시트위에 두 남녀가 필사적으로 끼어 안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다. 관계의 종말로 인해 공허한 슬픔이 감돈다. 여인은 아주 마르고 길어진 손으로 남자를 잡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쉴레 자신이기도 하며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관계의 종말로 인해 공허한 슬픔이 감돌고 있는 그림이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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