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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차별의 아픈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노스캐롤라이나의 윌밍턴을 출발해 인종차별 사건으로 유명한 찰스턴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골 맥도널드에 들렀는데 우리를 보고 모두 시선을 피한다. 힐끗 힐끗 보는 시선이 따가워 서둘러 자리를 떴다. 미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이질감이다.

2015년 6월 당시 21세였던 딜런 루프가 찰스턴의 임마누엘 아프리칸 감리교회에 침입해 흑인 신자 9명을 살해했다. 임마누엘 교회는 노예 해방을 주장한 덴마크출신 베세이 목사가 1822년 설립한 교회다. 베세이 목사는 고문을 당한 뒤 비공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교수형을 당했다. 이후 찰스턴의 백인들이 교회를 불태웠고 베세이 목사 아들이 후에 다시 설립한 교회다. 임마누엘 교회는 200여 년을 이어온 인종차별의 현장이다.

2015년 4월 백인 경찰 마이클 토머스 슬레이저가 검문 중 도망치는 흑인 월터 스콧을 등 뒤에서 권총을 쏴 살해했다. 명백한 살인사건이었다. 익명의 시민이 촬영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갔다. 슬레이저는 경찰 내부 보고서에 스콧에게 전기충격기를 뺏기고 몸싸움을 하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뉴스에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잘 차려 입고 여유롭게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이 방송됐다.

교회가 100여 군데나 되는 작은 도시를 돌아보고 노예를 거래하던 곳에 있는 노예박물관을 돌아봤다.



찰스턴 시는 잉글로 섹슨계 이민자들이 정착해 찰스타운으로 불렸던 곳이다. 1840년에는 미국 10대 도시 중 하나였다. 영국식민지시대 상업의 중심지였고 면화와 담배 수출항이었으나 남북전쟁 후 쇠퇴한 곳이다. 지금은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별로 볼 게 없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다.

찰스턴은 아프리카에서 노예 사냥꾼과 중간 상인을 통해 흑인을 노예로 수입해 오는 주요 항구였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미국에 노예로 잡혀오기 시작하면서 절반이 찰스턴 항구를 통해 들어왔고 미국에서 가장 큰 노예 시장이 형성됐다. 남동부 지역에 흑인 인구가 많은 것은 찰스턴에서 흑인들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찰스턴은 노예 장사로 부가 축적된 곳이고 지역에서 인종차별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초기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정체성이 달랐다. 보스턴이 중심인 뉴잉글랜드 지역은 청교도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이민을 온 곳이다. 남부 지역은 영국의 부유한 귀족들이 사람들을 보내 상업적으로 정착한 곳이다. 지금도 미국 동북부와 남부의 문화차이가 크다.

흑인 변호사회 회장인 말릭 샤바스는 "이곳이 부유하긴 하지만 분열이 남아있고 백인은 꼭대기에 흑인은 바닥에 있는 도시"라고 꼬집었다.

찰스턴은 백인들에 의한 인종차별이 일방적인 곳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백인들은 노예장사 하던 남북전쟁 이전의 의식수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며 개구리들의 우물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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