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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안락사 정당한가

[LA중앙일보] 발행 2008/02/08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2/07 17:21

모니카 류 카이저병원 방사선 암전문의

이렇게 사납게 비바람이 치는 추운 날은 집이라는 안식처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창밖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이처럼 추웠던 날에 잠재워야 했던 '사무라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사무라이'를 잠재운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내가 '사무라이'를 알게 된 것은 5년 전 일이다. '사무라이'는 내가 다니는 성당 마당에 살던 홈리스 고양이이다. 눈이 옆으로 길고 작아 붙인 이름이다.

그렇던 '사무라이'가 험한 날씨에 독감에 걸렸는데 어떤 치료에도 진전이 없었기에 그 녀석을 잠재우기로 힘겨운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사무라이'는 죽기 전 2주간을 나와 함께 지났다. 따뜻한 남향 방에 자리를 해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안아주기도 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조심스럽고 고마웠던 충고가 지금도 생각난다. 그 녀석을 잠재우기 전 나는 나를 위해 '사무라이'에게 여러 번 용서를 청했다. 그리고 하느님께도 많은 용서를 청했다. '목숨'을 단절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나에게 남편은 우리 인간도 불치병으로 아파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을 때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게 도와준다면 좋을 것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스 말에서 유래된 '좋은 죽음' 이라는 뜻의 '안락사(euthanasia)'란 정녕 정당한 것인가?

동물의 안락사는 미국만 해도 연평균 300만에서 800만 건이 행해진다. 홈리스 동물에게는 '좋은 죽음'이라는 뜻의 '안락사'가 아니라 입양해 줄 가정이 없고 이들을 살려 두기에는 돈이 아깝다고 믿어 그들의 목숨을 단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안락사는 이와 달리 본인이 원하거나 본인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경우를 미리 예측해 본인이 건강했을 때에 지정해 놓은 대변인의 의사에 따라 행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종교적으로 도덕적 의미에서 안락사는 쉽게 행해 질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개인적 인생관 종교관을 떠나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살인'이 행해질 수 있는 사회적인 우려도 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불교는 이러한 행위를 반대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가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은 '액션 T4'라는 이름으로 비밀 행정기구를 통해 불구이거나 지능이 모자라는 세 살 미만의 어린이들을 모아다가 안락사시켰다. 미국 내에서는 1997년 안락사를 합법화 한 오리건 주 내에서도 2004년 까지 안락사를 한 사람은 208명에 지나지 않는다. 안락사를 돕다가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미시간 주 출신 의사 케보키안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대형 종합병원에는 어려운 케이스들을 돕기 위해 목사 신부 스님 등 종교인과 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해 온 의사 법률가 환자권익 옹호원 등이 위원으로 포함된 윤리위원회(Ethics Committee)가 있다.

비바람 치는 날이 없는 삶은 없다. 삶의 질적인 의미나 죽음의 시기는 타인이 등급을 매기거나 결정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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