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아름다운 우리말] 훈민정음의 한글 자음 이름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현재 한글 자음의 이름은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등이다. 북한에서는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 비읍, 시읏, 이응' 등으로 쓰고 있다. 남북한의 이름이 세 개나 다르다. 그러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도 자음의 이름은 어땠을까? 남한과 같았을까, 아니면 북한과 같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까?

훈민정음 당시의 한글 자모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모음의 이름도 없지만, 이는 별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글 모음의 경우는 소리나는 대로가 글자의 이름이 된다.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가 그대로 이름이 되는 것이다. 한편 자음의 경우는 홀로 소리가 날 수 없기 때문에 별도로 이름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훈민정음에는 자음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름이 수수께끼가 되어 있다. 그럼 당시에는 자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음을 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었을까?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훈민정음에 보면 'ㄱㄴㆍㄴ 엄쏘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에 대부분의 힌트가 담겨있다. 'ㄱ'을 어떻게 읽었을지 알려주는 단서는 우선 두 개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ㄴㆍㄴ>이 ㄴ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대어 〈-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앞의 말이 받침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 〈의자는>과 〈책상은>을 보면 알 수 있다. 받침이 있었다면 〈-ㅇㆍㄴ>이 되었어야 한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ㄱ의 이름은 '가, 거, 고, 구, 그, 기'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갸, 교, 규'는 발음의 복잡성에 비추어 볼 때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두 번째는 아래아가 쓰였다는 점이다. 한국어는 모음조화가 가장 중요한 음운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모음조화는 중세국어에서 현재보다 훨씬 엄격하게 지켜졌다. 그런데 아래아가 바로 양성모음의 대표이다. 따라서 최소한 ㄱ의 이름은 모음조화 현상에 비추어 볼 때 음성모음이 가능성이 없다. '거, 구, 그'는 가능성이 없게 된다.



이제 남은 가능성은 '가와 고' 그리고 '기'이다. '가와 고'는 양성모음이고 받침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에 '기'는 중성모음이기 때문에 받침은 없지만 비교적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하지만 '기'가 답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ㅣ' 모음 뒤에도 아래아가 오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기가 답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즉, 세 가지 모두 자음의 이름이 되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가장 답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을 고르라면 뜻밖에도 '기'이다. 왜 '기'가 가능성이 높을까?

그 이유는 다시 한글 자모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훈몽자회에서는 '지, 치, 키, 티, 피, 히'는 이름이 단순히 1음절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쓰인 모음은 바로 'ㅣ'이다. 최세진이 갑자기 'ㅣ' 모음 1음절어를 자음의 이름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는 오히려 관습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에서도 첫 음절을 'ㅣ'모음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ㄱ을 기로 읽었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아마도 양성도 음성도 아닌 음을 이름으로 삼아 조화를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만들고 자음의 이름을 써 놓지 않은 점은 미스터리하다. 후세의 학자들에게 수수께끼로 남겨 둔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은 이 밖에도 다양한 수수께끼를 남겨 두었다. 훈민정음을 통해서 국어학자들의 즐거운 고민이 많아진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