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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의'

#. 동기가 선하면 결과야 어떻든 다 용서되는 것일까. 백 보 양보해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선의의 진정성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탄핵 인용으로 파면,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계속된 항변을 들으며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다.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 모두 13가지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이 모두 선의로 한 일이고 자신은 단 한 번도 사익을 도모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말 억울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도 선의란 그 행위나 결과가 누군가에게 이롭거나 유익을 끼칠 때라야 논할 가치가 생긴다. 좀 더 양보해 유익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해롭게 하거나 불이익을 끼친 일에 대해서까지 선의라는 말을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선의는 선뜻 납득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그동안 드러난 그의 언행과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너무 큰 실망과 배신감을 안겼다. 수치상으로도 박근혜 정부 4년은 비선 실세 국정농단 외에 인사 실패, 외교 실패, 국민 안전 실패는 물론, 최악의 남북관계, 최악의 청년 실업, 최악의 국가 부채라는, 부인할 수 없는 기록까지 남겼다.



법률 용어로서의 선의는 도덕적 평가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느냐 아니냐의 여부로 판단한다. 그 점에서만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선의가 타당할 수도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를 줄은 그 자신도 미리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이 생각하는 대통령의 선의란 법률적 정의를 넘어 훨씬 포괄적이다. 더구나 스스로 아무리 선의를 주장해도 그 속마음은 제 3자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리더의 선의는 더더욱 드러난 행위나 결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정치인의 선의는 별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혹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핑계나 술수로 선의를 들먹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굳이 리더의 선의를 이야기하자면 세종대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꼽히지만 그 역시 인간적 허물이나 정책적 과오가 없지는 않았다. 몸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일찍 건강을 잃었다든지, 10명이나 되는 후궁을 두었다든지, 수양대군을 정사에 참여시켜 훗날 왕위 찬탈의 단초를 만들었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세종이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모든 언행과 정책들이 애민(愛民)이라는 말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한글 창제였다. 알다시피 옛날에는 글자를 안다는 것이 극소수 상위 계층만의 특권이었다. 일반 백성은 함부로 글을 배울 수도 없었고 배워서도 안 되었다. 그런 백성들에게 한글은 처음으로 문자 사용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그것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군주가 먼저 그런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겼다는 것 자체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리더의 선의란 이런 것이다. 그 정도에는 못 미쳐도 적어도 소수에게 쏠려있는 힘과 권력, 후생과 복리를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동기만큼은 분명해야 선의를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지금 박 전 대통령이 부여잡고 있는 선의라는 용어는 너무 옹색하고 군색스럽다.


이종호 OC본부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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