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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소실'과 '붕괴'

[LA중앙일보] 발행 2008/02/13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08/02/12 18:41

김완신 편집 부국장

지난 주말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들었다.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이어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았다. 화재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일부 언론사는 '숭례문 소실(전소)'로 제목을 정했고 다른 언론사들은 '숭례문 붕괴'로 헤드라인을 세웠다.

화재로 건물이 불탔을 때 '소실'이나 '전소'가 어법상 자연스럽지만 왠지 이번에는 '붕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 것 같다.

'소실'의 사전적 의미는 불에 타서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붕괴'는 '허물어져 무너진다'는 뜻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 '붕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화재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소실'에 비해 약하다.

'소실'은 화재에 국한되지만 '붕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소실'은 형체를 갖고 있는 건물이나 물건이 불에 타서 없어졌을 경우에만 사용한다. 반면 '붕괴'는 형체가 있는 물건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나 이념 등이 무너지거나 사라질 때도 쓰인다.

세상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귀중한 물건과 눈에 안 보이면서도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금 은 보석 재물 등이 눈에 보이는 귀중품이라면 역사 철학 이념 종교 등은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무형의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문화재는 가시적인 가치와 무형의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숭례문은 한국 목조건축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술품이다. 지금까지 서울 시민들은 눈에 보이는 객체로서의 아름다운 숭례문을 향유해 왔다.

그러나 숭례문의 가치는 단지 예술품이라는 실체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실체는 없지만 무형의 가치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600여년을 이어온 역사와 시대정신이 그곳에 존재하고 국보1호라는 국가적 자부심이 함축돼 있다.

이러한 무형의 가치가 문화재와 예술작품을 구별하는 것이다.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도 그것이 바로 문화재가 되지는 못한다.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 자리에 추모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명이 없는 대상를 '추모'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민들의 집단적인 애도는 숭례문이 이제까지 건물이 아닌 한민족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생명'으로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번 화재는 문화재 관계기관의 관리 소홀이 가져온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허망하게 불타 앙상한 돌벽만 남은 숭례문을 보면서 용마루 위의 '어처구니'를 생각해 본다.

'어처구니'는 상상 밖으로 큰 물건이나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민간에서는 맷돌의 손잡이 또는 궁궐이나 도성을 지을 때 용마루에 올려 놓은 토용(흙 인형)을 지칭하기도 한다. 토용을 만들어 놓는 이유는 잡신을 쫓고 건물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숭례문에도 여러 개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이중 한개의 '어처구니'가 떨어져 나간 일이 있었는데 이번 화재로 모두 사라지게 됐다. 숭례문의 어처구니가 전부 불탄 말 그대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이번 화재다.

오랜 풍상을 견뎌온 민족의 자존심은 이제 사라졌다. 첨단 건축기술을 자랑하고 속도라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은 새 숭례문을 빠른 시간 안에 번듯하게 세울 것이다. 그러나 화재가 남겨놓은 부끄러운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돌 하나 나무 하나에 스며 있었던 역사의 숨결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어처구니 없는' 불로 숭례문은 '소실' 됐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붕괴'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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