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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조울증 이긴 희망

[LA중앙일보] 발행 2008/02/1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2/14 17:21

수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두툼한 봉투가 사무실로 우송되어 왔다. 뜻하지 않게 반가운 사연과 사진들이다. "K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우주 과학자로 취직까지 하였습니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닥터 정에게 졸업 사진들과 그간에 받은 상장들을 보냅니다." 환자 어머니의 편지였다.

K를 처음 본 것은 그가 14세 때였다. 11살에 '주의산만증세'가 있어서 소아과 의사에게 각성제 처방을 받으며 공부를 잘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불안증세가 오더니 위험한 행동을 한단다. 폭죽을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이 거의 잘릴 정도로 부상을 입었는데 또다시 프로판 가스에 골몰하는 바람에 소아과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한 것이다.

이 백인 소년은 그리스계 부모의 외동아들로 분노가 심하며 걸핏하면 물건을 던지거나 싸움을 했다. 또 부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등교를 거부했단다. 필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소년은 예의 바르고 또렷하게 질문에 답했다. 그간 A학점만을 받아온 수재다웠다. 그러나 눈여겨보면 말소리는 빠르고 쫓기는 듯(Pressured Speech)했고 과대 망상적인 생각에 정서도 불안했다.

"K가 '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주의산만증'이 있는 젊은이들 중에서는 '불안증'이나 '우울증'이 발병하는 경우가 약 40%이고 20%는 '조울증'이 올 수 있습니다. '조울증' 증세는 기분이 고양되어 공연히 기분이 좋고 잠을 안 자도 기운이 나고 힘이 넘칩니다. 그러나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 '조울증' 증세가 심하면 분노와 감정 조절의 불능 아니면 조바심이나 안절부절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그 후 4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K는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결국 고교 12학년 1년 동안을 집에서 공부하며 간신히 졸업장을 받았단다. 과거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대학교에 입학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보낸 사진 속에 K는 부모님과 함께 졸업 가운을 입고 환히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여럿이 같이 하는 공부시간 대신에 K는 자신의 '기구 실험(Balloon Project)'에 심취하면서 각 교수들의 방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본래 학생이 많이 있는 교실에서는 적응이 힘들었으니 교수를 찾아다니며 단독 수업을 한 셈이다. 학생의 열심에 교수들도 감격을 했을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 문을 연 대학교이니 교수들이 시간의 여유도 있었나 보다.

대학 첫 해는 낙제를 할 만큼 부진했다. 그러나 어느 날 식당에 웨이터로 취직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뛰어난 용모와 기발한 유머 감각 그리고 재치 있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4000여 달러를 저축했다. 이것이 그가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되었고 그의 '기발함'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상자 밖(Outside of Box)에서의 생각을 하는 아이답죠?" K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말이다. '대기 측정기'로 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는 '우주과학' 회사에 전격적으로 취직도 되었다.

"'남과 다른 것' 때문에 그토록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요?" 이민자 부모로서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자해를 일삼던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말이다. K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나를 심란하게 만들던 모든 환자들을 다시 희망찬 눈으로 보게 하는 오늘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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