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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천재 시인의 성의식

[LA중앙일보] 발행 2008/02/19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2/18 16:01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극작가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1892~1950)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을 했다. 연기는 그녀와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그녀의 전기 작가 엡스타인은 밀레이가 '춘희'를 감상할 때에는 당시 세계적인 여배우 새라 버언하트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연기는 그녀에게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웠다. 무대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친구나 애인 또는 일반인들 앞에서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을 설정하고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해냈다. 뛰어난 미모와 활달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키가 5피트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른 체격에 흰 살결을 지닌 밀레이가 길고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캠튼 거리를 지나갈 때에는 그녀의 모습을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한동안 사귀었던 남자는 밀레이가 마른 몸매에 비해 유방이 뛰어나게 발달해서 상의를 입었어도 마치 젖가슴이 옷을 비집고 밖으로 튀어나오듯 유난히 드러났었다고 회고했다.

시를 낭송할 때에는 관중들을 압도할 만큼 특출했다. 요정 처럼 작고 가는 몸매에서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콘트라알토의 저음 소리가 나면 관객들은 깜짝 놀랐다. 어떤 이는 금관의 종소리라고 표현했다.

1950년대 아일랜드 출신의 딜런 토머스가 시 낭송을 하면서 미주 전국 횡단여행을 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훨씬 이전에 이미 밀레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래서 밀레이는 이미 대학 시절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시인 명사가 되었다. 바사 여자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밀레이는 시와 희곡을 썼다. 대학생 신분으로 쓴 '공주가 시종과 결혼하다(The Princess Marries the Page)'를 학교잡지에 발표했으며 이 연극에서 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밀레이는 몰래 캠퍼스를 빠져나와 술에 취하고 채플 시간에 빠지며 강의에 들어가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소문은 당시 학장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나 밀레이의 재능과 사회에서 얻은 인지도를 잘 알고 있는 학장은 "자네가 학교의 무슨 규칙을 어긴다해도 나는 자네를 축출하자는 표결에 찬성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자네와 같이 훌륭한 시인을 퇴교시키지는 않을 작정이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밀레이는 "정 그러신다면 이 지옥 같은 곳에 계속 남아있어야 되겠군요"라고 쏘아 주었다고 한다.

대학 재학 시 밀레이는 특출한 과제물을 제출해 교수들을 놀라게 했고 교과 과정에 있는 모든 현대언어 과정을 수강했으며 상당한 수준의 라틴어도 배웠다.

밀레이는 학생시절 무수한 동성 경험을 했다. 윌 매티슨이란 영국 여배우가 그녀에게 키스를 한 다음 자신의 여름 별장으로 초대했다. 그들은 대서양을 건너 편지를 교환했다. 밀레이는 "당신은 내게 아주 아름다운 편지를 보냈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이 내게 조금이라도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겠지요"라고 적었다.

동성애가 금기시 되던 시절 아주 노골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천재 문인은 동성애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지평을 넓히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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