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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종말의 아름다운 선택

[LA중앙일보] 발행 2008/02/22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2/21 17:11

모니카 류 카이저병원 방사선 암전문의

토요일 저녁시간 늦게 전화벨이 울렸다. "오 나 리카르도요. 늦은 시간이지만 힘들고 궁금한 게 많아 폐가 되는 줄 알지만 전화 했소. 집 사람 마리아가 아파요." 리카르도는 내 아버지 벌의 연세가 드신 노인이다. 이 어른의 아내인 마리아씨가 수술이 불가능한 위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침착하고 평화로웠다. "조금 몸이 피곤하긴 하지만 먹는 것도 괜찮고 지낼만 해요. 수술이나 약물치료가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그냥 호스피스 간병 치료를 받을까 해요"라고 차분히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나라 태생이건 대부분의 암 환자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화를 내거나 울거나 한탄을 하거나 의사를 탓한다. 심한 경우에는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종말이 가깝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환자와 가족들은 완치되는 확률이 아주 적은 것을 이해하면서도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부작용이 심한 치료를 마다하지 않고 택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의사들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본다. 힘든 치료를 받고 그로 인한 부작용과 씨름하느라고 얼마 남지 않은 짧은 나날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만다. 결국 괴로워하다가 세상을 뜨기도 한다.

마리아씨는 현명하였다. 그녀의 종교가 또 자신이 터득해 온 삶의 철학이 그녀를 도와 주었는 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대에 이곳에 와서 공부하였던 경력이 있다. 그녀는 남은 다섯 달을 호스피스 환자로서 편히 가족과 지내다가 종말을 맞았다.

호스피스는 라틴말에서 온 것으로 손님 즉 지나가는 객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호스피스는 새로운 기구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유사한 기구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대의 호스피스는 1960년대 영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면 된다.

데이비드 타스마라는 암에 걸린 한 유대인 할아버지와 그가 사망할 때 까지 이를 지켜보고 함께 걸어 주었던 소셜워커 시실리 샌더스가 구상하였던 것으로 이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500파운드의 돈을 기본으로 본격화한 것이라면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사립 호스피스 단체도 많아져 1984년에 메디케어에 등록된 호스피스가 31개에서 2002년에는 2265개로 늘었다.

호스피스의 목적은 환자들이 살아 온 익숙한 환경속에서 생을 편히 보내도록 환자 가족들과 협조 도와준다. 빈혈이면 수혈을 통증엔 진통제를 진통제 때문에 변비가 생기면 변비를 해결해준다. 육체적으론 양질의 삶을 영적으론 죽음의 준비를 도와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을 직시하기 보다는 '회피'하고 때로는 '터부'시 하기도 한다. 내가 본 많은 환자들 그들의 대부분은 종교가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거론' 하지 않음으로 '회피' 하다가 임박한 임종을 앞두고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뒤늦게 호스피스의 도움을 청해 겨우 며칠의 도움을 받다가 세상을 뜬 경우도 많았다.

타주 여행 중에 마리아씨가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평안한 임종을 맞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의 흐트러짐이 없는 종교관 현명한 인생관을 생각하면서 나를 찾아오는 암 환자들에게 친절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들과 함께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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