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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두 깃발이 휘날린다

[LA중앙일보] 발행 2008/02/27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08/02/26 16:11

김완신 편집 부국장

예술 중에서 시.공간적 제약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장르는 음악이다. 문학의 경우는 언어를 매개로 전해지고 이해되기 때문에 언어를 모르면 의미전달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술도 '보고 감상한다'는 의미에서 문학보다 덜 제한적이지만 음악이 만드는 공감의 폭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음악과는 달리 문학과 미술은 감상의 방식이 '1대 1'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전시회를 통해 여러 사람이 같은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는 개인적 차원의 감상일 뿐 음악처럼 동일한 공간 동일한 시간대에 다수의 공통된 감상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이는 대규모 청중이 한 장소에 모여 음악을 같이 듣는 '연주회'라는 형식을 갖고 있는 음악장르만이 가능하다.

지난 26일 북한의 동평양대극장에서는 서방 국가로는 처음으로 뉴욕필하모닉이 공연을 가졌다. 분단 반세기를 넘어 열린 이번 공연을 세계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주목하고 있다. 평양 연주회의 음악은 이념을 초월하는 역사적 울림이었고 두 나라 교류의 출발이었다.

이제까지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가 음악을 통해 교류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냉전시대였던 지난 1956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자유진영 최초로 소련의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이 공연에서는 평양 연주회와 마찬가지로 방문국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소련 국가를 먼저 연주했고 이어 미국 국가가 이어졌다.

3년 후에는 뉴욕필하모닉이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소련 연주회를 가졌고 1973년 중국에서는 필라델피아 필하모닉이 베이징 연주를 통해 미.중 수교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

음악의 영향력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랩 음악은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소년병들까지 열광시켰고 중미의 작은 나라 쿠바의 음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보듯이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음악은 정치와 외교가 넘을 수 없는 체제와 이념의 장벽을 초월한다. 독일의 한 작가는 음악에 대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번역이 필요없는 언어가 음악이고 그 이유는 음악은 혼에서 혼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이런 점에서 뉴욕필하모닉의 북한 공연은 큰 의미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방국가의 교향악단이 찾아간 땅은 시간의 간격은 있었지만 모두 개방사회로 돌아섰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굳게 닫혔던 성벽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이번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 체제의 폐쇄성과 보수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일과성의 행사로 음악회를 유치했을 수도 있다. 또한 미국에서 온 교향악단의 음악 몇 곡이 평양에 봄을 가져오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서로 비방하고 견제하며 지내온 두 나라의 국가가 평양 한복판에서 동시에 연주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음악회는 의의를 갖는다. 음악을 실은 바람결이 성조기와 인공기를 나란히 펄럭이게 한 것만으로도 분명히 변화는 변화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음악이 있는 곳에는 악(Evil)이 없다"고 했다.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계기로 '악의 축(Axis of Evil)'을 운운하는 나라도 '악의 축'으로 지칭되는 나라도 없는 그런 세계가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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