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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김스운전학교 김응문 교장, 44년 외길인생 …운전교사는 내 운명

DMV 시험관 포기하고
가주 첫 한인 운전교사 돼
트래픽스쿨·음주운전 교육
주정부 지정 첫 한인 업체
9만여 명 학교 거쳐 가
운전 가르친 제자 4천명
"시니어 운전 향상 위해
강의하며 여생 보내고파"


그에게선 따뜻함과 느긋함이 함께 느껴졌다. 오랜 시간 진심 다해 누군가를 가르쳐 온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평안함 같은 것이었다. 김스운전학교 김응문(78) 교장이다. 지난해 희수(喜壽)를 넘겼건만 반백년 전 일도 어제 일인 양 불러오는 비상한 기억력과 넘치는 활력은 웬만한 청년 저리 가라다. 초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오후, 바닷바람 끝자락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김스운전학교 뒷마당에서 그를 만나봤다.

#가주 첫 한인운전 교사

신의주 출생인 그는 배재고를 거쳐 1964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69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주사 퍼시픽 대학에 입학, 사회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소셜워커를 지망했던 그가 운전교습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히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LA에 오자마자 치른 운전면허 실기에서 두 번의 낙방 끝 합격을 한 것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면허 취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웨이에서 과속 티켓을 받은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한국에선 속도위반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티켓을 받고도 대체 뭘 잘못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티켓을 준 경찰에게 미국 운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려 달라 했죠."

그래서 찾아 간 곳이 가주고속도로순찰대(CHP)가 운영하는 안전운전 교육 프로그램.

"당시 한국 이민자들이 쇄도 하고 있던 때라 강의를 들으며 이런 좋은 정보를 제대로 가르쳐 줄 한인 운전학교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길로 차량국(DMV)을 찾아가 운전학교 개업 절차를 알아봤더니 운전교사로 500시간 일한 경력이 필요하다 해 LA에 몇 안 되는 운전학교 중 하나였던 LA운전자교육센터에서 1년간 근무했다.

"DMV에 학교 오픈을 문의하러 갔을 때 담당자가 한인 운전 시험관이 없다며 시험관 시험에 응시하라 권유해 얼떨결에 시험을 봐 합격했지만 운전교사에 대한 꿈을 포기 못해 다시 운전교사 시험을 봤죠. 합격 후 DMV 담당자가 가주 첫 한인 운전교사라고 말해주더군요."

#44년 외길 인생

1974년 그는 LA한인타운에 문을 연 김스 운전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엔 운전교사들이 자기 차로 운전을 가르쳤는데 1년 마일리지가 4만 마일이나 나올 정도로 정말 바빴죠. 한 달 수입은 2400달러 정도였는데 당시 DMV 운전시험관 월급이 2000달러인 걸 감안하면 수입도 좋은 편이었죠."

이처럼 학생들이 밀려들다보니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8시 퇴근이 예사였다. 그래도 그는 운전 가르치는 즐거움에 힘든 줄도 몰랐단다.

"대학시절 가정교사로 제가 꽤 날렸어요.(웃음) 가르치는 게 천직이었는지 운전교사도 제 적성에 딱 맞아 몸은 고돼도 정말 즐겁게 일했죠."

그렇게 운전교사로 1년여 정도 재직하다 1975년 김스운전학교 오너로부터 학교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운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김스운전학교는 DMV가 지정한 LA시 최초의 트래픽스쿨 10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면서 타운 최초의 한국어 트래픽스쿨을 시작했다.

"처음엔 한인회관 2층에서 클래스를 시작했는데 자리가 없을 만큼 성황을 이뤘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기다렸다 수업을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트래픽스쿨에 1년 평균 2000여명이 다녀갈 만큼 성황을 이루면서 비즈니스는 승승장구했고 덕분에 그는 1979년 베니스 길에 지금의 김스운전학교 2층짜리 건물을 매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잘나가던 비즈니스도 80년대 들어서면서 타운에 운전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수강생들이 급감하자 적자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행히 학교가 1984년 LA카운티가 지정한 음주운전자 교육학교 124곳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불황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면서 굽이굽이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지금껏 운전을 가르치며 얻은 보람이 훨씬 더 크다고 말한다.

"지금껏 제가 운전을 가르친 이들만 4000명이 넘어요. 그들 중엔 청각장애부터 한쪽 시력이나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들,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도 있었는데 분명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운전면허를 딸 때면 제 일처럼 기뻤죠. 그들에게 운전면허는 단순한 면허 취득이 아닌 삶에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일이거든요. 누군가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으니 보람 있을 수밖에요."

#운전교사는 평생의 소명

이렇게 하루 12시간씩 일에 매달리는 일상이 10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40대 중반에 이르러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어느 날부턴가 두통이 심해지고 만성피로로 코피를 흘리는 일도 빈번해졌다.

"그 후부터 건강식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래서 지금까지 아침엔 생식주스와 사과, 고기 한 점은 꼭 먹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철 과일을 챙겨 먹는 게 건강 비결이라면 비결이라 할 수 있겠네요."

또 매일 아침 30분씩 걷고 일주일에 2~3차례씩 수영도 꼭 한다는 그는 나이 60에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찾다 등산에 입문한 이래 65세이던 2004년엔 위트니산 정상 등반을 할 만큼 등산의 매력에도 푹빠져있다. 어느새 여든이 코앞이지만 그는 여전히 현업에서 뛰고 있다. 하루에 2시간씩 운전 강습을 하고 정기적으로 음주운전 교육 및 트래픽스쿨 강의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시니어 운전기술 향상프로그램.

"DMV 발표에 따르면 이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는 65세 이상 운전자 대부분이 90세가 되도록 무사고 운전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한인 시니어들에게도 나이에 맞는 운전 기술을 가르쳐 90세까지 무사고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운전교육 강의 외에도 현재 그는 300쪽에 달하는 캘리포니아 교통법규의 한글 번역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현업에서 95세까지 일하고 싶어요. 운전학교가 이민자도 줄고 온라인 수강 등으로 사양산업이 됐지만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는 거니까요. 지금껏처럼 이 길이 소명이려니 하며 살아가는 거죠.(웃음)"

그래서인가 보다. 그가 평안하고 행복해 보인 이유는. 소명 받은 길이라 믿고 걷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그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으니까.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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