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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빌딩 숲 사이의 ‘예술과 낙서’의 차이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4/17 16:06

화가들은 다양한 바탕과 표면을 화폭으로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가장 오래된 화면 바탕은 돌로 된 벽이나 동굴 벽이었다. 세월이 흘러 벽화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의 교리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교미술의 정점을 찍는 탱화의 시작이 벽화였고, 유럽의 유명한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바티칸 성당 천장에 라파엘이 그린 성화들도 같은 맥락이다. 중세기 이후 대부분 그림이 종이나 캔버스 위에 그리는 것으로 바뀌어 가면서 벽화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벽화는 전통벽화(Mural)와 그라피티(Graffiti)로 구별된다. 전통벽화는 성당이나 대형 건물 안에 그려지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이에 반해 저항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그라피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로 폐허가 된 빈민가나 도심가에서부터 시작됐다. 현대 그라피티는 1960년대 말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tag)을 남긴 인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화가 범람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분무 스프레이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 경기장, 테니스 코트, 지하철 전동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이 그림을 ‘스프레이 아트’, 혹은 ‘에어로졸 아트’라고도 부른다.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로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작품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발휘한 것들이다.

그라피티 예술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영국의 거리 미술가 겸 공공장소 낙서 예술가인 뱅크시이다. 그의 작품 주제는 주로 전쟁과 아동 빈곤, 환경 등을 풍자하는 내용이 많다. 뱅크시의 정체는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 있으나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180만 달러 이상 고가에 팔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깜깜한 밤중에 작품을 빠른 속도로 단속반들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그려낸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은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하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큰 도시가 가진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며칠 전 뉴욕에서 그라피티 화가들이 건물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건물 주인이 사전 통보와 자신들의 허락도 없이 작품을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1990년 제정된 ‘시각예술가 권리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는 달리 필라델피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벽화제작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벽화를 의뢰하여 도시미관을 예술적으로 살려 나가기 위한 장려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낙서가 아닌 예술로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똑같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허하고 삭막한 아파트 단지 벽에다가 전문 벽화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벽면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 주민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용하고 있다. 낙서 그림이 아닌 제대로 그린 벽화를 보급하여 오랜 세월로 낙후된 건물이 많은 곳이나 을씨년스러운 빌딩 숲을 아늑하고 산뜻한 분위기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워싱턴~볼티모어도 이러한 사업을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미술을 전공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워하는 화가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도시미관도 좋아져서 주민들의 정서도 밝아지리라 본다. 서로가 상생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태원/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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