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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도(道)는 닦을 필요가 없다

박재욱 법사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이보시게 스님, 스님은 시방 뭣에 그리 열심이신고?"

묵묵하다. 좌선 중임을 모를 리 없는 노장스님이 잠시 뜸을 드리다, 시치미를 떼고 다시 묻는다. 그제야 파릇한 젊은 스님, 마지못해 본체만체 쏘듯이 내뱉는다.

"아, 보면 모르시겠우? 좌선 중인걸"

"아, 그러신고? 한데 좌선은 해서 뭣에 쓰시려나?"



하나마나한 질문에 마땅히 퉁명스럽다. "득도!"

그 등등한 서슬에 노장스님은 가만히 물러간다.

그 노장은 바로 남악회양(중국 677~788)선사이다. 젊은 스님은 훗날, 회양선사의 선맥을 잇게 되는 마조도일 선사이다. 두 선사는 선종 황금기의 들목에서, 그 선풍(禪風)과 선향의 풍미를 한층 가열한 분들이다.

호남성 형산(남악) 반야사에 주석하고 있던 회양선사가 어느 날, 인근 바위에 앉아 비바람 속에서도 불철주야 용맹정진하고 있다는 젊은 스님을 찾은 것이다.

다음날 도일스님은 좌선 중 옆에서, 바위에다 기왓장을 갈고 있는 예의 그 노장스님의 느닷없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무슨 생뚱맞은 사태인가.

"스님! 스님은 시방 뭣에 그리도 열심이시우?"

"아, 보다시피 바위에 기왓장을 갈고 있네만…"

"그런가요? 한데 기왓장은 갈아서 뭣에 쓰시려고?"

"그야, 거울을 만들고자 하네만…잘 되려나 모르 것네."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드시것다? 어느 시절에"

"그래? 한데 내 듣자허니 스님은 앉아만 있는 좌선으로 부처가 되려한다면서? 아니, 어느 시절에?"

그 대꾸에 말문이 막혀버린 도일은 이 노장의 예사롭지 않은 언사에 눌려, 그제야 눈여겨 살핀다. 회양 대선사가 아니신가. 아뜩하다. 바로 몸과 마음을 여민다.

"그럼, 어찌해야 일대사를 마칠 수가 있겠습니까?"

"이보시게, 그래, 수레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레를 채찍으로 다그쳐야겠는가, 소를 다그쳐야겠는가?"

홀연, 마른하늘을 가르는 천둥번개 같은 섬광이 도일의 칠흑 같은 칠통(무명)을 쪼개 부수며 지나간다.

지금도 중국 형산에는 마경대(磨鏡臺)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고자했던 곳'이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앉음새, 즉 몸(수레)이란 형식에 집착하여 고요만 누리는 좌선으로는 어림없다. 정작 본질인 마음(소)을 놓치는, 그런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일갈이겠다.

그 후, 마조도일 선사는 가히 선종의 혁명아가 된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다'하여 깨달음의 틀을 완성 시켰으며,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천명함으로써, 불성이니 여래장이니 하는 관념적인 언어들을 '평상심'으로 전환하여, 기존의 가치와 완고한 인식의 틀을 전복 시켜, 생활 속의 선을 구현하고 정착시킨다.

마조도일 선사의 위대함은 수행의 새로운 정형을 정립하였으며, 조작과 간택, 차별 등 번뇌에 물들지 않은, 시장하면 밥 먹고, 차 마실 땐 차만 마시는 평범하고 예사로운 일상의 마음이 도라고 한 것에 있다.

그래서 도불용수 단막오염(道不用修 但莫汚染)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 다만 물들지만 말라'고 한 것이다.

(사족: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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