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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추억하며] "아버지, 이제는 다 이해가 됩니다"
케네스 김(관영) / 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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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7/04/20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7/04/1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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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산에 자주 가셨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78세 노인이 홀로 LA카운티에서 가장 높은 볼디산을 등반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700번이 넘도록 볼디산에 오르셨고, 1000번을 목표로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상에서 늘 태극기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한반도 깃발을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그런다고 남북통일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산에 그만 오르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의 시골에서 자라셨습니다. 존함은 김자 석자 두자 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신 후,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일하셨고 연세대학교 MBA 과정과 영국 맨체스터에서 공부하셨습니다. 네 명의 자녀 중 저는 막내입니다. 1981년, 아버지는 LA지사로 전근하셨고 3년 후,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주유소 겸 편의점을 매입하셨고, 일주일 내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어머니와 함께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주말마다 일을 했습니다. 제 유일한 휴식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일요일 교회에 가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도 아버지는 홀로 가게를 지키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게에서 일하시며 수 많은 강도 사건과 1992년 LA폭동도 경험하셨습니다. 제가 의대에 재학할 때, 아버지께서는 저의 첫 차를 사주셨습니다. 수동식 창문이 있는, 가장 저렴한 차량들 중 하나였는데 더 좋은 차를 사 주지 않은 것이 서운했습니다.

2010년, 아버지는 자녀들을 모두 데리고 한국으로 여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당신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대해 쓴 백일장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에서 활약하신 가문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아버지께서는 등산에 더욱 몰입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산을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형과 함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볼디산의 정상에 오르며 저는 문득 아버지가 어떤 느낌이었을 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볼디산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볼디산에 오르시면 평화로운 느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 납니다. 어머니한테는 하느님이 자신을 포옹해주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상은 오직 완전한 침묵과 평화만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저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왜 거의 매일 산에 오르셨는지 이해했습니다. 아버지는 등산을 통해 자유로우셨던 것입니다. 40대 후반부터 60대 중반까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날마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 틀어박혀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산에 가실 때마다 고향 생각도 하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할아버지가 조선의 독립을 갈구했던 것처럼 아버지도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셨고 등산으로 그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상에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한국의 통일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등산은 연로하신 아버지가 통일을 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행복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힘들게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고, 위험한 산을 내려오면서, 마침내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셨다는 것을. 그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미래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면, 제 미래의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었다면 정말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 올 줄만 알았습니다.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한 번만 더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한 포옹으로 말입니다.

(※고 김석두씨 장례식은 22일(토) 오전 10시 세인트 그레고리 성당에서 열리고 오후 1시 만리장성에서 추모모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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