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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내로남불' 애국자 대원군
이종호/OC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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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7/04/2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04/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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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 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조선 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다. 아들이 12살에 왕위에 오르자 10여 년간 섭정을 하며 권세를 휘둘렀다. 당시 조선은 60여 년간 이어진 세도정치로 권력층은 부패했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대원군은 그런 나라를 바로 잡으려 했다. 족벌 안동김씨 세력을 축출하고 당파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국가 재정 낭비의 주범 사원을 정리하고 조세제도의 근간인 삼정(전정-토지세, 군정-군역세, 환곡-이자세)의 문란도 해결했다. 대원군의 치적들이다.

잘못도 있었다. 당시는 중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의 길을 재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대원군은 거꾸로 나갔다. 나라 문을 꼭꼭 걸어 잠궜다. 고유 문화와 정체성을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1871년 신미양요는 그 절정이었다. 미국과의 전쟁, 그 전말은 이렇다. 미국 군함 5척이 강화도에 나타났다. 5년 전 평양 군민들에 의해 대동강에서 불에 타 침몰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손해배상 청구와 통상교섭 요구가 목적이었다. 조선은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결국 전투가 벌어졌고 미국 함대는 물러갔다.

조선군은 350명이 죽고 20명이 다쳤다. 미국측 사망자는 3명, 부상자 10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대원군은 외세를 물리쳤다는 승리감에 도취했다. 여세를 몰아 쇄국을 강화하는 척화비까지 전국에 세웠다. 서양 오랑캐의 침범에 맞서 싸우지 않음은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위정척사론이 당시로서는 대세였다. 대원군은 그 논리에 충실한 애국자였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대원군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이씨 왕조의 전제 왕권이었다. 백성의 삶보다 사대부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가 더 중요했다. 대원군의 애국이 진정한 애국이 될 수 없었던 이유다. 권력자의 맹목적 애국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읽지 못해 조선은 근대화의 기회를 놓쳤고 끝내는 나라까지 잃었다. 그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후세의 몫이었다. 애국에 대한 바른 인식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일깨워 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신종 사자성어가 유행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접할 때마다 애국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애국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원래 애국심이란 자기가 나고 자란 모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본능적 애정이다. 보편적 감정이다. 보수나 진보 특정 세력의 독점물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애국심만 애국심이고 너의 애국심은 아니라는 '내로남불'식 애국론의 만연은 개탄스럽다. 위정척사는 애국, 개화는 매국. 대화는 매국, 전쟁은 애국. 150년 전의 이런 단순 이분법적 애국론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음도 안타깝다.

21세기 세계의 화두는 평화와 공존이다. 국가든 사회든, 개인끼리의 관계든 과거처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을 제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만큼 대화와 협상이 중요해졌다. 나는 새로 뽑힐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이길 기대한다. 국민을 어떻게 더 잘 살게 할 것인가, 소용돌이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국익을 극대화할 것인가를 제대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길 소원한다. 누가 그런 후보일까. 진정한 애국자를 찾아내는 게 답이다. 그러자면 역사의 교훈을 살펴, 시대의 흐름을 살펴 눈과 귀를 좀 더 활짝 열어야 한다. 대원군의 애국도 결과적으로는 진정한 애국이 아니었음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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