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베드로의 사랑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성 크리스토퍼성당)
그래서 처음에 부활하신 주님이 다락방에 숨어서 문을 닫아걸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나서기 좋아하던 전과는 달리 풀이 죽어 앞에 나서지 못했다. 세 차례나 모른다고 부인한 그날을 생각하면 자책때문에 입이 있어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침식사가 끝나자 다가와 마주 보며 말씀을 건네신다. 얼굴에 고통이 역력한 그에게 예수님은 속을 후벼 파는 아픈 질문을 하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이때 '아가페'의 숭고하고 흠없는 그의 사랑에 대해 물으신다. 하지만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이 그런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인간적인 사랑, 필리아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것만은 그분께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로 그분이 물으실 때에도 재차 사랑에 무능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 밖에 다른 답을 드릴 수 없었다.
예수님은 세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의 앞선 대답에 쓰인 '필리아'란 희랍어 동사를 받아 "그래, 나는 너의 인간적인 의리로나마 너의 친구가 맞느냐?"라고 되묻고 계신다. 베드로는 이제 완전히 자신이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자신 안에 가진 것은 아무것도 드릴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적인 허약함으로 그저 인간적인 사랑 밖에 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래서 세번째 답은 마치 "주님, 당신을 향한 제 초라한 인간적 사랑이나마 제발 믿어 주시고 받아주십시오."라고 대답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세 번의 철저한 겸손을 요구하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당신께 대한 자신의 하찮은 사랑을 인정할 때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고 그에게 사도와 제자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믿어 주신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을 따라 나서는 길에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겸손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백으로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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