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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죽음에서 삶을 생각하다

볼디산에서 실족사로 운명을 달리한 산악인 고 김석두 선생과는 15년 전부터 이어진 인연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LA한인타운에 샘터서림이라는 서점이 있었다.

선생은 법정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 6권을 골라 계산을 치르던 참이었다. 세일이 하루 전에 끝난 것을 몰랐던 선생은 할인가격으로 줄 수 없냐고 물었고, 주인으로부터 곤란하다는 말을 듣는 중이었다. 선생 뒤에는 김중식(현 수요자연산악회 회장)씨가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좋은 책을 고르셨네요, 선물하시려나 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할인 차액을 내드리면 안되겠습니까." 선생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말문을 튼 두 사람은 등산,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민 경력 20년차란 동질감으로 형·동생이 됐다. 이 훈훈한 사연을 기사로 소개한 게 첫 인연이다. 김석두 선생과는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사적 관계를 이어갔다. 미국에 와서 만난 많은 사람 중에서 가족같은 친밀감을 갖는 몇 안되는 분이다.

천주교 신자였던 선생은 다석 유영모 선생을 흠모하며 '자각의 삶'을 추구했다. 의식과 철학이 없는 삶은 껍데기 삶이라고 하면서 자신과 당신 가족들을 채근했다. 정신적인 삶을 강조하다보니 세상 주변에는 친구가 많이 없었다. 강직한 영혼이 속세와 한데 어울리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혼자서 거듭 산을 오른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두산보다 높은 볼디산을 무려 700번 이상 오른 그는 몇 개월 전 LA타임스와 등산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평화롭다, 하느님의 품에 안긴 것 같다, 천국을 느낀다"고 했다. 마치 예고라도 한 듯.

선생을 묻고 돌아온 뒤 일상의 굴레 속에서 잊어버렸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일상에 분주한 사람들을 관찰하면, 사람들이 정말 그곳에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몸속에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시선은 공허하고 몸은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듯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서 늙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을 만끽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우리들의 삶들이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불교 영성가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는 깨어있는 '자각(awareness)'이 삶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에게는 선물이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자각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망상이나 번뇌, 혐오감이나 호감 등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두 선현이 말한 참된 삶의 골자는 '자각'이다. 생각하는 삶, 영혼이 있는 삶이어야 동물과 다른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음을 말한다.

많은 죽음을 접한다. 양로병원에서 초점 없는 눈동자로 천장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70년을 살고, 90년을 사는 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오래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자각과 영혼이 없는 '장수'는 단지 시간의 길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김석두 선생의 장례식 후 추모모임에서 "원 없이 사신 분"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맞이한 행복한 죽음"이라는 말을 여럿 들었다. 선생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자각'하며 살았다. 그에게는 가버린 어제도, 오지 않은 내일도 없었다. 오로지 지금에 집중했고, 그것을 느끼며 영혼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는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

"언젠가 죽게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산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즐길 수 있다."(게르투르트 보이머) 조만간 선생을 만나러 볼디산에 오르련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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