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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기억을 담을 한평의 박물관도 없다

1240만 달러 구호성금은 어디에
'조각조각' 푼돈으로 나뉘어져
당시 한인구호단체들 뭘했나

4·29폭동 25년이 흐른 지금 한인사회가 받은 상처는 아물었을까. 1992년 한인사회는 폭동을 계기로 두 얼굴을 마주했다. 한국과 미 전역에서 1240만 달러라는 구호성금이 답지했다. 가정주부인 조영진씨는 폭동에 맥없이 불타는 한인타운을 보고 '평화대행진'을 제안했다. 5월 2일 10만 명에 이르는 한인이 LA한인타운에 모여 정의와 평화를 외쳤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공권력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억울함과 서러움을 달랬다.

폭동이 잠잠해진 직후 한인사회 구성원들은 절대 이날의 아픔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여러 단체가 만들어졌다. 4·29박물관 건립 등 역사를 기록하자는 외침도 힘을 얻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5년 전 폭동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나섰던 인사들은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4·29폭동 구호단체들과 관여했던 주요 인물을 찾아봤다.출처:한미교육연구원·한인역사박물관>

김형재 기자

4·29폭동범동포한인비상대책위원회



1992년 5월 1일 LA총영사관 박종상 총영사와 한인단체장들은 범동포한인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한국 대한적십자사(총재 강영환)의 성금 453만 달러를 피해자 500~700명을 선정해 피해자 1세대당 약 2500달러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초대 위원장: 강득희 상공회의소회장 (이하 모두 당시 직책)

▶공동의장단: 이종원(LA한인회)·하기환(LA상공회의소 부회장)·김치현(한미식품상협회 회장)·전수웅(한인타운교민회)

▶고문단: 정의식(한국노인회장)·이민휘(재미대한체육회장)·신한구(교회협의회장)·홍영환(남가주한인목사회장)·김도안(남가주불교사원연합회장)·이상섭(가톨릭사제단)

성금분과위원회(한미구호기금 전신)

4·29폭동범동포한인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성금분과위원회는 한국 대한적십자사 성금 453만 달러 배분을 총괄하며 4·29폭동한인피해자협의회와 대립했다. 이 단체는 폭동 직후 한미구호기금으로 명칭을 바꾸고 2005년까지 활동한다. 성금 배분 과정에서 약 135만 달러는 '4·29박물관' 건립 기금으로 별도 배정했다. 이후 LA한인타운 6가와 카탈리나 코너 건물(현 MBC아메리카 사옥)을 매입한다. 하지만 1999년 해당 건물을 헐값에 매각한다. 이사장 공금유용, 은행 주식투자 탕진 등으로 지탄을 받았다.

▶성금관리위원장: 1대 하기환, 2대 전수웅, 3대 최상봉, 4대 곽철, 5대 이민휘, 6대 전주찬

한인비상구호대책본부

1992년 5월 1일 한국일보는 미주본사와 한국 한국일보 성금모금 활동에 나서며 한인비상구호대책본부를 발족했다. 미주 350만 달러, 한국에서 440만 달러를 모금해 피해자 약 2000명에게 1인당 500~2000달러를 전달했다. 이후 한인비상구호대책본부는 4·29폭동한인피해자협의회의 계속된 요구에 따라 약 146만 달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장: 유의영 박사(캘스테이트LA 교수)

▶위원: 장재민(한국일보 회장)·유근관 교수·김봉환(한인청소년회관장)·안용식·안덕원 목사·강성용 변호사·신영한 CPA·신종욱·민병용·윤온숙·김영빈·김선영 등

4·29폭동한인피해자협의회

1992년 5월 1일 폭동피해자모임을 자청한 이정·임춘훈·홍사일·이종원씨 등은 한인 피해자 2150여 명을 대표한다며 별도 구호단체를 구성했다. 이 단체는 한국 대한적십자사와 한국일보 구호성금 총 1243만달러를 직접 배분하겠다며 구호단체들과 대립했고 법원 소송도 제기했다. 이후 이 단체는 구호성금 배분 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 부실 비판에 직면했다.

▶초대위원장: 이정

▶부회장: 손원호·권익남

▶위원: 임춘훈·홍사일·이종원 등

4·29성금 단일화추진위원회

1993년 3월 17일 이민휘씨는 한미구호기금재단과 4·29폭동한인피해자협의회가 성금 배분을 놓고 대립하자 위원회를 결성했다. 구성원은 4월 13일 한미구호기금재단 이사로 영입된다.

▶회장: 이민휘

▶이사: 안응균·스칼렛 엄·이영송·유성겸·김영태·김지수 등

4·29폭동이재성추모장학회

1993년 10월 LA총영사관은 한국 정부에서 지원한 영사활동비 약 123만 달러로 '4·29폭동이재성추모장학회'를 설립한다. 장학회 명칭은 고 이재성군 부모의 부탁으로 4·29장학재단으로 변경된 뒤, 한미장학재단, 한인동포장학재단, 한인장학재단 순으로 바뀐다. 한인장학재단은 123만 달러 장학기금을 유지한 채 수익금으로 지금까지 매년 10~3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초대 이사장: 박희민

☞구호성금 현재 가치

1992년 4·29폭동 한인 구호성금은 1240만 달러로 집계됐다. 25년이 흐른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달러가치를 환산하는 달러타임스(www.dollartimes.com)에 따르면 1992년 1240만 달러는 2017년 217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다. 1994년 한미구호기금이 성금을 남겨 4·29박물관 용도로 매입한 LA한인타운 6가와 카탈리나 현 MBC아메리카 건물은 당시 135만 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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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LA폭동 원인은…
위키백과 한·미판 차이


인터넷 백과사전의 하나인 위키백과 한글판이 4·29 LA폭동 발생 배경설명을 왜곡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키백과는 첫 문단에서부터 '1992년 로스앤젤레스 사태는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소녀에 대한 인종차별에 격분한 흑인들에 의해 발생한 유혈 사태'라고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위키백과 영어판은 배경 설명에서 폭동이 로드니 킹 사건 및 관련 경관의 무죄 평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흑인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병일 기자


김형재· 김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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