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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 에세이] 제값을 하며 살아가는 것들

인디언들은 숲속에 자기 나무를 정해놓고 긁어주고 쓰다듬어주기도 하면서 애지중지 기르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살아가며 힘이나 용기가 필요할 때 그 나무를 찾아가 등 뒤로 감싸면 그 나무의 힘이 자기에게로 온다고 믿었다. 이를 눈여겨본 미국의 식물학자 마르셀 보겔이 애무나 포옹을 하면서 유발되는 인간의 심리적 변화를 그래프로 그리는 심전계를 나무에 장치하여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애무를 받으며 사는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뭇잎들에 비해 진폭이 컸으며, 이것이 나무가 자라는데 활력을 갖게 하는 신진대사와 직결되어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식물학자 박스터는 식물에도 지각과 감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화분들이 있는 방에 거미를 들여놓고 그 접근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심전계의 진폭으로 식물도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새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식물도 생물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것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식물에도 애증이 있다고 한다. 포도나무는 시샘이 대단하다. 특히 느릅나무에 대한 질투는 별나다. 다른 넝쿨이 느릅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이를 질투하여 독을 뿜어 기어코 느릅나무를 죽게 한다고 한다.

유럽 숲속에 사는 베터니라는 풀은 포도주에 취했을 때 먹는 약초인데 포도가 자라면서 이 풀이 있는 쪽으로는 넝쿨도 뻗지 않는, 상극이라는 것이다. 20년 전쯤 한국의 연구진이 발견한 사실은, 포도가 마늘을 무척 싫어하는데 6월에 포도를 수확한 후 포도 줄기에 마늘즙을 발라놓으면 싫어도 11월에 다시 한번 더 열매를 맺어 2모작을 해 사람들에게는 좋지만, 포도나무는 마지못해 하는 것이란다.



얼마 전 캐나다의 맥 애스터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다. 식물도 천적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북미 5대호 주변에 서식하는 해마강초 라는 식물이 자기 가족을 식별하는 동물처럼 한 모체에서 나온 직계식물을 구분할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식물도 주변에 다른 식물이 감지되면 흙 속에 영양소를 흡수하는 뿌리를 공격적으로 확대하지만, 같은 모체식물에는 물과 양분을 양보한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공생과 방어의 묘기 속에 산다 하겠다.

그간 크고 작은 태풍이 한두 번 지나간 우리 동네는 집집이 나무가 쓰러지지 않은 집이 없다시피 했다. 대충 치운 것 같은데 아직 몇 집은 차례가 되지 않았는지 그대로 있어 운전할 때면 매번 조금씩 비껴가야 한다.

망연히 서서 나무가 서 있던 자리와 하늘을 번갈아 보며 나무의 일생을 생각해본다. 그렇게 몇십 년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리라. 나잇값을 한 건가? 나잇값? 그러고 보면 사람이야말로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사람도 누구나 어머니의 목숨을 건 고통을 뚫고 자신의 목숨도 건 채 어두운 통로를 지나 울면서 혼자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지면, 또 죽을힘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어려움, 비루함, 남루함도 고스란히 견디며.

<이기적 유전자> 의 저자 도킨스는 인간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 번식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생물적인 가치를 넘어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욕구가 있다. 오늘 동포사회도 연륜을 더해 성년이 되었음을 곳곳에서 인지할 수 있다. 좋은 단체들이 생기고 구체적인 실현에 뛰어들어 열매들을 맺고 있다. 모두가 나잇값을 하는 것일까? 시원한 저녁 바람이 지나간다. 나무가 사라진 빈자리가 희망이 되어 돌아온다.

김령/시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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