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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물질의 노예생활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현대인들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명품가방을 선물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가격표가 높을 것은 물론이다. 명품 브랜드가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치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보다 한 버전 앞선 모델의 스마트폰을 손에 넣기 위해 수십만 원을 기꺼이 쓰는 것이 현대의 '세련된' 소비자들이다. 제 아무리 헛되고 어리석어 보일지언정 세상의 유행에서 홀로 자유롭기란 출가자인 필자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소비가 '차이를 위한 소비'일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경제학자 베블렌이 가격이 높아질수록 소비가 늘어나는 과시적 소비 효과에 대해 최초로 설파한 것이 이미 한 세기 전의 일이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하나의 상품을 구매할 때 상품 자체의 내재적 효용에 대해서만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주는 이미지와 환상의 가치에까지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품의 디자인이나 브랜드 이미지는 그 물건의 쓰임새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업이 품질 개선이나 생산보다 오히려 마케팅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상품 회전율을 높이는 것, 즉 더 빨리 물건을 쓰고 버리고, 다시 새로운 물건을 사도록 부추기는 일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ㆍ사용자가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음)라고 하는 정보통신 환경은 이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억측을 부려보자면,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이 거대자본의 이익을 위한 시스템의 충실한 단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한다.

굳이 불교의 가르침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이 욕망의 속성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꽃과 과일이 무성한 오아시스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것도 없는 신기루야말로 욕망의 실체일 것이다. 신기루를 좇는 맹목적인 소비를 반성하고 현명한 소비자로서 이 냉혹한 자본주의 정글을 헤쳐 갈 궁리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프랑스 사람들은 아직도 가구가 망가졌을 때 새로 사는 비용과 수리비용이 같다면 헌 가구를 고쳐 쓴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어느 결에 소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하고, 가격표로 가치를 대체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소중한 일상이 한낱 소비의 장소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난 4월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로 원불교가 개교한 달이었다.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하고 있는 물질문명에 걸 맞는 정신문명을 키워가지 못한다면, 인류는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치 못할 거라는 것이 원불교의 가르침이고, 이는 이미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분명 인류의 발전과 행복에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계속해서 인류의 번영에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문명과의 조화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현대 소비문화를 보며 새삼 되새겨 본다.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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