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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4000'

김완신 편집 부국장

특정한 날을 기념할 때 햇수에 따라 더 큰 의미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결혼 4주년이나 14주년을 기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10주년 또는 20주년일 때는 특별한 행사를 갖는다.

숫자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년 기념일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주는 편리함도 있다. 그러나 숫자가 '사망자 수'일 경우는 존엄해야 할 생명의 가치가 '수량화' 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23일 바그다드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으로 미군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후 미군 전사자수는 4000명을 기록했다. 전쟁을 시작한지 5년만이다.

3999명과 4000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숫자로만 볼 때는 복잡한 '3999' 보다는 딱 부러지는 '4000'이 더 상징성이 있다. 그렇지만 숫자가 합산하는 대상이 인간의 생명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3999명의 죽음은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4000명이 됐을 때 애도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불경일 수도 있다.



미군 이라크 전사자수가 4000명에 이르자 언론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부 언론의 웹사이트는 사망자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게재하면서 죽음을 추모했다. 대통령은 4000명을 기록한 바로 다음날 급히 특별회견까지 했다. 마치 4000명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보도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추모'보다는 '4000'이라는 숫자가 더 강하게 남는다.

4년전 이때쯤 시카고에서 특색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고 이에 대항할 민주당 후보의 경선이 한창이던 때였다.

시카고 페더럴 플라자에서 열린 행사에는 500켤레의 군화가 전시됐다. 500의 숫자는 그때까지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군인의 수를 상징했다. 찢어지고 먼지가 쌓인 군화 앞에는 숨진 군인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라크의 총성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당의 예비경선 열기도 뜨겁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500켤레의 군화가 4000켤레로 늘었을 뿐이다.

이라크에서는 4000명의 군인이 죽고 9만명의 이라크 주민이 희생됐는데 정치인들의 독선과 허망한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은 확고하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항상 이라크 전사자들을 잊어 본적이 없고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이라크 파병 군인들이 가능한 한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이라크 전쟁은 이미 끝났어야 할 전쟁이라며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한편에서는 명분없는 전쟁을 고집하고 다른 편에서는 대안없는 철군을 외치고 있다.

시카고 군화 전시회를 주최했던 마이클 맥커넬 디렉터는 "진실이 승리해야만 숨진 병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정치인들은 자신만이 진실이고 옳다고 한다. 5년의 세월이 흘러도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진실' 때문에 수천의 병사와 수만의 주민들이 사라져 갔다. 포화는 계속되지만 전쟁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가는 사망자 '숫자'만이 지구 저편의 이라크 땅에 전쟁이 있음을 상기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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