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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페]시로 기도하는 목사, 허 권 시인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5/03 06:23

“설교가 곧 시요, 말씀이 곧 문학이라”

시인이기 이전에 한 교회를 이끌어가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로 허 권 시인을 만났다. 인사로 건네받은 소박한 교회 주보에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시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서 있는가 / 나를 사랑하듯 이웃 사랑하면, 인생이 즐거워짐을 / 어찌하여 오늘도 울며 서 있는가 (중략)’.
허 목사가 직접 쓴 설교 시란다. ‘목사는 왜 시를 쓰게 되었을까’, 아주 쉬울 수도 혹은 의외일 수도 있는 정답을 찾아 시인을 만났다.

“몇 년 전 상점에 갔더니 주인이 책을 반쯤 읽다가 페이지를 접어놓은 게 보였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제 책인 거예요. 제 시가 너무 재미있어서 일하며 매일 꼭 한 장씩 읽는다는데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요. 그 날 이후 글 쓰는 사람의 즐거움, 읽어 주는 즐거움을 더욱 깨닫고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 시인의 정체도 모른 채 읽어주던 시집 ‘도피성’은 지난 2003년, 한 선교 단체가 5년간 허 시인이 써 온 설교 시를 모아 선교용으로 전파한 책이다. 이는 지난 14년 동안 읽는 이에게는 즐거움과 깨달음이 되어줬고, 지은 이에게는 용기와 열정이 되어준 셈이다.

목사의 시인 등단. 허 시인의 문학과 인연은 1957년 대학 시절로 거슬러 간다. “연세대 국문학과 출신이에요. 내가 하나님 말씀을 문학으로 알아본 것도 아마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을 배웠던 기초 덕이 아닐까”라고 되짚는다.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군수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돌다 중학교 2학년 즈음 대구에서 정착, 당시 어머니가 태평로에 책방을 여셨단다. 그때부터 하루에 적어도 1~2권의 책을 읽고 읽다 보니 쓰게 되고, 또 쓰다 보니 배우고 싶어져 결국 국문학과까지 갔다. 어머니는 신학대학 가서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바라셨고, 아버지는 법학대학 가서 정치가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모두 뿌리치고 오로지 본인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매정하게 택한 문학애도, 할 것 많은 젊은 청춘에게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허 시인은 “당시 저희 은사님들이 박두진 시인, 최현배 한글학자, 박영준 소설가 등 쟁쟁한 분이셨다”며 “그 속에서 2년 내내 과 친구들은 다들 현대문학이나 자유문학 등에 추천을 받는데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그 길로 다시는 문학 따위는 돌아보지 않겠다 다짐했죠”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때부터 한 때는 연극에 빠져 살고, 또 한 때는 유창한 불어 실력을 내세워 프랑스에 장학생으로 유학,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영어 강사 등을 하며 어학과 더불어 살았다. 하지만 어학을 하며 결국 영시에 재미를 붙여 미국까지 오게 된 허 시인. “사실 여러 가지를 하며 살았는데 지나고 보니 형식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문학이 아닌가 하는 갈증이 늘 있었죠.”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기신 ‘목회자가 되었으면’ 하는 유언을 뿌리칠 수 없어 목사가 됐다. 허 시인은 이를 두고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교회를 창립한지 벌써 19년,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편씩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설교문을 작성해 이번이 986번째 쓴 시”라며 “어느 날 설교문을 가만히 보니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시와 같더라고요.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목사가 되어 제가 좋아하는 시를 쓰고 있으니 하나님은 제게 더없이 큰 행복을 주셨네요.”

이렇게 신의 도움으로 묵혀둔 문학의 갈증을 해소하고, 시인은 지금도 매일 새벽이면 글을 쓴다. 허 시인은 “하나님 말씀을 빌려 매일 글을 쓰고는 있지만 글 쓰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나만의 좀 더 창조적인 언어가 샘솟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은 게, 정말 글을 잘 쓰는 분들을 보면 하나님보다 더한 분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웃음)”라며 “그런데도 심오한 신의 생각을 통해 시 속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게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며 쉬지 않고 죽는 날까지 시를 쓰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내년이면 교회 창립 20주년을 맞는 허 권 목사, 그리고 곧 천 편의 시를 채우게 될 허 권 시인. 오늘도 시인이 간구하는 기도가 시의 선율을 타고 목마른 이의 가슴에 다가선다.

기도

내 기도는 본초 자오선
연민하는, 첫 사랑의 데이트

록키 산정과 맞닿은, 안개 속에서
이스라엘의 아브라함처럼
베일에 가린 그대와, 이야기를 나눈다

서에서도 만나고, 동에서도 만나고

내 기도는, 내가 듣지 못하는
수천 년 전, 요나의 큰 고기 뱃속에서

육지로 살아나오는
육지로 살아나오는
부활의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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