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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배신의 정치, 배신자의 말로

[LA중앙일보] 발행 2017/05/05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05/04 21:50

#.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오늘 칼을 겨눴던 사이가 내일이면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 국제 관계가 그렇고 한국의 정치판이 그렇다. 살벌한 비즈니스 현장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기본적으로 에고이즘에 기반을 둔다. 그런 점에서 배신도 결국은 생존 본능의 발로다.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버리는 행위가 배신이기 때문이다. 배신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온갖 부정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배신에 대해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다고 배신이라는 행위가 쉽사리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배신이 비난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오랜 상식과 보편적 감정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배신을 대하는 사람의 첫 반응도 한결같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 문다' 등의 속담은 그래서 생겨난, 배신의 예측불가성에 대한 경고다.

배신자라는 낙인은 좀처럼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다. 그럼에도 배신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배신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 때문이다. 주위의 비난과 스스로의 양심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이익이 예측될 때만 배신도 한다는 말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정치인들의 배신도 똑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 배신의 역사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고 깊다. 조선시대 정치사를 돌아봐도 고비마다 배신으로 점철된 권력 암투로 물들어 있다. 큰 뜻을 품고 행동을 같이 하기로 했던 무리가 한두 명 배신자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경우도 허다하다. 조선 초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섰던 사육신 사건도 그 중의 하나다.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쫓고 새 왕이 되자 집현전 선비들이 일어섰다.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훗날 사육신으로 불리게 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이 그들이다. 이들 외에도 김질 등 많은 문무 관리들도 거사에 동참키로 했다.

거사일은 명나라 사신의 환영연으로 잡았다. 지근 거리에서 임금의 신변을 지키는 호위무사 별운검(別雲劍)을 통해 세조와 그 아들들을 척살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회 당일 별운검을 따로 세우지 않는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계획은 미뤄졌다. 이에 불안을 느낀 김질이 장인 정창손을 통해 모든 계획을 밀고해 버렸다. 당연히 피바람이 몰아쳤고 가담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수백 명이 처형되거나 노비가 되었다.

김질은 출세 길을 달렸고 정승반열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세상인심은 달랐다. 꿋꿋이 지조를 지킨 사육신은 훗날 복권이 되었고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다. 그렇지만 밀고자 김질은 물론, 같은 편이었다가 세조 편으로 돌아선 신숙주 등도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어 두고두고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 한국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또 한 번 배신의 정치가 재현됐다. 바른정당의 10여명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선 후보 지지율이 지지부진하자 헌신짝같이 당을 버린 것이다. 비난과 비판이 빗발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이다. 그들의 잇따른 탈당과 배신이 생존본능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명분 없는 배신자를 기억하는 것 또한 국민의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배신당했을 때의 그 황망함과 곤혹스러움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로 인한 고통을 두 번 겪지 않기 위해 배신자라면 더 철저히 기억하는 것이다. 이 당 저 당 옮겨 다닌 해바라기 정치인 치고 끝까지 잘 된 사람이 없다. 그때마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결국은 약삭빠른 제 잇속 챙기기였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배신도 능력인 시대라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그들이 너무 성급했고 많이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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