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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한국 선수의 우승이 LPGA의 '흑역사'?

"링컨과 LPGA가 무슨 관련이 있나요?" 독자 한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내려 해도 프로여자골프와 링컨과의 연결고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남북전쟁 때 링컨이 골프를 칠 리도 없을 테고." 답신을 보냈다. 다시 이메일이 왔다. "ESPN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요.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요."

긴가민가하며 찾아본 결과 정말이었다. 그것도 리드(기사의 첫머리)에 그렇게 쓰여있다. "링컨과 게티즈버그 연설에 사과했듯이…." 이어지는 문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사는 유소연이 렉시 톰슨과의 'ANA 인스피레이션' 플레이오프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선 유소연은 톰슨에 사과하고 우승트로피를 반납하라는 맥락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

ESPN은 지난 4월 초 LPGA 시즌 첫 메이저 대회 경기 도중 일어난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 톰슨은 대회 마지막 라운드를 불과 여섯 홀 남겨두고 스코어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소연과는 3타차.

하지만 이게 웬일. 경기위원이 느닷없이 톰슨에 4벌타를 매겼다. 전날 공을 제자리에 놓지 않고 쳤다는 제보자의 신고를 받았다며. 유소연과 서든데스까지 치렀으나 충격을 받아서인지 끝내 무릎을 꿇었다. 톰슨으로선 억울할 만도 할 터.



ESPN은 왜 뜬금없이 남북전쟁 얘기를 꺼냈을까. 대체 누가 링컨에 사과를 했는지 알아야 궁금증이 풀릴 텐데. 혹시 그 언론사? 의문은 얼마 안 가 풀렸다. ESPN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150주년을 맞아 지역신문인 패트리엇 & 유니언이 사과문을 실은 것에 빗대 기사를 쓴 것이다.

링컨은 전쟁이 한창일 무렵인 1863년, 게티즈버그의 국립묘지 전사자 추도식에서 연설을 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됐다"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했다. 연설은 3분여에 불과했으나 인류역사에서 영원히 회자될 기념비적인 내용을 담아냈다. 그런데 패트리엇 & 유니언은 사설에서 "대통령의 어리석은 발언을 무시하겠다"며 딴지를 걸었다.

그 신문사가 150년 만에 당시 게재한 사설을 철회한다며 링컨과 게티스버그 연설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한 것이다. 엉터리 사설이 나가게 된 경위도 눈길을 끌었다. "그 시대 기자들 사이에 흔했던 독한 술의 영향일 수도 있다." 술에 취해 사설을 썼다니….

ESPN은 이같은 과거사를 들먹이며 유소연의 우승을 헐뜯었다. 이 기사 때문인지 미국 선수들이 제보자가 누군지 공개하라며 LPGA 측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도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선수들은 한국 측을 의심하는 듯하다. "제보자가 우승자의 에이전트나 친구의 친구라면 어떡할 것인가." 미국 선수들의 맏언니 격인 크리스티 커는 아예 대놓고 한국선수들을 용의자로 몰았다. 한때는 영어를 못한다고 시비를 걸더니만 이젠 승부 조작혐의까지.

사실 4라운드 초반만 해도 톰슨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노르웨이 출신의 수잔 페테르센이었다. 같은 백인이어서 '혐의없음'일까. 링컨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했는데. 골프도 알고 보면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스포츠' 아닌가.

오늘(18일)부터 나흘간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에서 킹스밀 챔피언십이 열린다. 대회 관전 포인트는 역시 유소연과 렉시 톰슨 간의 자존심 대결이다.

얼토당토않게 링컨까지 거론하며 유소연을 무참하게 깎아내린 ESPN. 유소연이 우승하면 공개사과할지 지켜보자.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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