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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마약 딜러 생활, 되돌릴 수 있다면…"

가정의 달 기획 인터뷰
마약 중독자·판매업자였던 30대 한인 여성의 고백

중학생 시절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음지 인생'
"평생 떨쳐내기 힘든 유혹…주위의 배려 절실"
재활 프로그램 들어가기 위해 임신 중 '흡입'
"한인사회도 상상 그 이상으로 문제 심각해"


"마약에 중독되면 평생 떨쳐내기 어려워요.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최근 오렌지카운티 모처의 푸른초장의 집(원장 빅토리아 홍) 사무실에서 김순영(가명)씨를 만났다. 김씨는 20여 년간 마약 딜러 생활을 한 마약중독자다.

그는 지난해부터 푸른초장의 집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마약을 끊고 일자리를 구해 착실하게 사는 것, 많은 이가 일상으로 여기는 평범한 삶이건만 최근까지 그에겐 이 생에선 넘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자녀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김씨는 "마약의 무서움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에 응했다"라며 되돌리고 싶은 과거를 털어놓았다. 김씨의 신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인터뷰 세부 사항 중 일부는 수정하거나 생략했다.

◆마약 딜러가 되다

누구나 살다보면 인생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중요한 순간을 맞는다. 김씨에겐 그 순간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중학생 시절 마약을 팔기 시작했어요. 학생 판매책을 만들려는 마약 딜러의 꼬임에 넘어간 거죠. '나도 돈을 벌어봐야지'란 생각과 호기심으로 시작했어요. 당시엔 필로폰하고 크랭크란 이름의 마약이 많이 팔렸고 마리화나는 거의 없었어요."

마약도 그때 처음 시작했다. "잠이 안 오고 배가 고프지 않았어요. 살이 빠지니 좋기도 했고요. 네 번째 약을 하면서 '아, 내가 중독됐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맞벌이로 바빴던 김씨의 부모는 딸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밤 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니 방해하지 말라고 하고 밥 먹으라고 하시면 '아까 챙겨먹었다'고 둘러댔어요. 눈이 충혈된 건 밤새 공부했다고 둘러대고 혹시 들킬지 몰라 마약은 마당에 숨겼죠."

◆퇴학을 당하다

김씨는 고교 시절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가 학교 당국에 적발돼 퇴학당했다.

"한인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렸어요. 전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소지품 검사를 당했는데 마약이 발견된 거예요." 경찰에 체포된 뒤 청소년 감호시설에도 갔다. 법원에선 김씨와 그의 부모가 상담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그때 처음 안 가족들이 난리가 났어요. 퇴학 당하고 홈스쿨링을 하면서 1년간 마약을 끊었는데 오래 가지 못했어요. 예전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쉽게 약을 구할 수 있었거든요."

김씨가 수 년간 부모에게 마약에 중독된 사실을 들키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마약 딜러였기 때문이다. "대개 마약 살 돈을 구하기 위해 부모 돈을 훔치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하다가 나중엔 절도범이 되기도 하거든요. 난 마약을 팔았기 때문에 돈이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래서 더 문제가 커졌지만요."

◆드럭하우스에서 살다

얼마 가지 않아 김씨는 LA의 드럭하우스(마약중독자들이 모이는 곳)를 들락거렸다. "수십 명이 들락거리면서 약을 팔고 사고 했어요. 약에 취한 사람들 투성이였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별별 일이 다 벌어지는 곳이에요."

집에는 어쩌다 한 번씩 들렀다고 한다. "가족들은 어떻게든 날 설득하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니까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어도 외면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못된 딸이었어요."

김씨는 이후 본격적인 마약 딜러의 길을 걸었다. 어린 시절부터 약 20년간 마약을 공급하는 한편, 마약에 절어 살았다. "한인사회의 마약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해요. 나름 성공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에도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전보다 마약 값이 싸진 것도 마약중독자가 는 원인이죠."

◆홈리스 아닌 텐터스(Tenters)

불과 2년여 전까지 마약 딜러를 한 김씨는 홈리스들 사이에서 마약, 마약 관련 범죄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홈리스 텐트촌 있잖아요. 거기 가면 맨션 텐트란 게 있어요. 큰 텐트에 침실, 주방, 거실이 갖춰진 곳인데 드럭하우스로도 사용돼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일반 가정집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가전제품 쓰고 살아요. 멀쩡한 사람들이 마약 때문에 텐트촌을 찾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홈리스가 아니라 텐터스라고 불러요."

일부 마약 딜러, 범죄자는 신분증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홈리스에게 마약을 주고 신분증을 손에 넣는다. 이렇게 손에 넣은 신분증이 신분도용 범죄에 쓰일 것은 자명하다.

마약에 중독된 여성 홈리스는 매춘에 나서기도 한다. "약을 조금 주면 텐트 안에 어린 자녀가 있건 말건 몸을 팔아요. 마약이 이렇게 무서워요."

◆중독 치료엔 배려가 필요

김씨는 여러 차례 마약을 끊으려다 실패했다. 그는 7년 전 어머니가 병으로 타계한 뒤 약 2년간 마약을 끊고 직장에 다닌 적이 있다.

"마약이 정말 무서운게 약을 안 하니까 술을 마시게 되더라고요. 퇴근 후 다음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사우나에 들렀다가 출근하는 생활이 이어졌어요. 결국 또 약에 손을 댔고요. 난 지금도 앞으로 평생 마약을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재활 프로그램에서도 "앞으로 절대 마약을 하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하지 말라고 하겠어요. 그 다짐이 뇌리에 박혀 자꾸 마약을 생각나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하루 무사히 넘길거야'라고 생각하고 정말 참기 힘든 순간이 오면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참아야지'라고 되뇌며 고비를 넘겨요.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죠. 마약과 싸우는 게 이렇게 힘든데 많은 한인들은 인내심이 없어요. 가족 중 누군가 마약에 손을 대면 '이제 평생 마약중독자로 살아갈거야'라며 쉽게 포기하거나 한 달쯤 마약을 끊은 사람에게 '이제 일자리 구해서 돈 벌어야지'라고 재촉해요. 조금만 더 이해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임신 중 마약 흡입

김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아이 아버지도 마약중독자다. 세 아이가 아직 어린 가운데 또 임신한 김씨는 막다른 길에 몰렸다. "약을 꼭 끊으려고 결심했어요. 약도 안 팔고요. 그러니까 돈이 없는 거예요. 하도 여러 번 속은 가족은 날 믿지 못하고 도와주지 않았어요. 애 아버지는 다른 사정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고요. 당장 갈 곳도 없는데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러다가 재활기관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지요. 이미 마약 때문에 체포된 적이 있어서 소셜워커한테 아이들도 뺏긴 상태였어요. 일종의 보호관찰 상태 같은 건데 어디 가서 일을 할 수도 없었어요. 애들을 데리고 도망치면 아동 납치로 잡혀가고 포기하면 다른 곳으로 입양돼요. 재활 프로그램을 마치고 애들을 도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울면서 마약을 했어요. 그리고 소셜워커에게 이 사실을 알렸죠. 법원에도 '제발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어요. 그래서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갔어요. 애들은 포스터 홈에 가 있었고요." 회한어린, 그러나 담담한 말투로 인터뷰를 이어가던 김씨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희망을 꿈꾸다

김씨는 머지않아 태어날 아기 생각만 하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당시엔 그것이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요, 누군가가 꼼짝달싹하기도 어려운 순간에 재활기관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그건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해요."

김씨는 머지않아 재활 프로그램을 마친다. 간혹 마약의 유혹에 흔들릴 때면 하늘이 내린 기회를 또 물거품으로 돌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해요. 지나간 인생이 후회되지만 좋은 분을 여럿 만날 수 있었던 점은 감사해요. 아기가 태어나면 말하고 싶어요. 부디 엄마를 용서해 달라고요." 김씨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글·사진=임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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