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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HJ글로브 샘 정 대표 "모든 스포츠 종목 최고의 장갑 제조가 목표"

6세 때 이민 온 1.5세
호텔리어로 일하다 입사
1999년 대표 취임
18년간 비약적 성장 일궈

골프장갑으로 세계 톱10
유럽·아시아 30개국 수출
공장 직원 봉사활동 후원
주니어 선수에 무료장갑도


그는 블랙 골프셔츠에 한 눈에도 꽤나 무거워 보이는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이름 꽤나 날리는 사업체 대표라기보다 딱 PGA 투어에 나선 선수처럼 보였다. 시선을 사로잡은 CEO의 백팩엔 뭐가 들었을지 꽤나 궁금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염치불구하고 물었더니 그가 보여준 백팩 안엔 HJ 제품들이 한 가득이었다. 각양각색 골프장갑과 팔 토시들이 주를 이뤘는데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사 제품을 자랑할 혹은 팔 준비가 돼 있는 노련한 판매왕에 다름 아니었다. 타고난 사업가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HJ글로브 샘 정(48) 대표를 LA한인타운에서 만나봤다.

#HJ에 입사하다

3남1녀 중 막내인 그는 여섯 살 때인 1974년 LA로 가족이민 왔다. LA한인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글락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고교시절 학년 학생회 부회장을 맡을 만큼 리더십이 뛰어났다. UC어바인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미국 회사에서 잠시 근무하다 1992년부터 윌셔가 코리아나 호텔에서 구매담당과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4년 HJ글로브 창업주인 고 전홍식 사장의 장녀와 결혼하며 HJ에 입사했다.



"입사 제안을 받고 처음엔 망설이기도 했지만 일 하나만은 확실히 배울 것 같았고 회사를 함께 성장시켜가는 보람도 있으리라 생각해 입사를 결심하게 됐죠."

HJ글로브는 1970년 영화감독이었던 전홍식 사장이 'HJ 스포츠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에서 창립한 골프장갑 전문업체다. 창립 초기엔 해외 유명 스포츠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납품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전 사장은 가족들을 이끌고 1976년 앤아버 미시건으로 이민 와 HJ 자체브랜드를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미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1983년 지금 HJ 본사가 있는 웨스트레이크로 이주했고 이후 HJ는 품질 하나만으로 골퍼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미국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HJ 비약적 성장을 이끌다

HJ 입사 당시 그의 직함은 영업담당 매니저. 그러나 직함만 매니저일 뿐 물류창고에서 물건 쌓고 나르는 일부터 청소, 자질구레한 사무업무도 마다치 않으며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 나갔다. 그리고 입사 2년 만인 1996년 총괄 매니저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전 사장을 도와 캐나다, 남미, 한국 등 세계시장을 노크하며 HJ글로브를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시켜 나가는데 주력했다. 그러다 1999년 전홍식 사장이 작고하자 장인의 뒤를 이어 그가 대표로 취임하게 된다.

"당시 전 사장님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정말 고민이 컸죠. 다만 더 열심히 일해 세계 최고의 골프장갑 업체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새 그가 취임한지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HJ글로브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현재 HJ는 골프장갑으로는 세계 톱10에 드는 전문 업체로 성장했고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해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유럽시장과 캐나다, 아시아, 남미, 남아공 등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또 2004년엔 인도네시아에 4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자체 공장도 건립했다. 오픈 당시 100명이던 공장 직원이 10년도 채 안 돼 500여명으로 늘어날 만큼 HJ는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이런 HJ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현장을 발로 뛰는 그의 꼼꼼한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년에 두 차례씩은 HJ 제품을 판매하는 한인업소를 찾아 세일즈맨을 자청한다.

"한인 골퍼들이 골프용품에 워낙 관심이 크고 평가도 정확해 제조사 입장에선 도움이 많이 되죠. 또 한인 고객들과 어울려 골프와 제품 이야기 나누는 게 즐겁기도 하고요.(웃음)"

또 HJ는 커뮤니티 봉사와 골프 꿈나무 지원에도 열심이다. 인도네시아 공장의 경우 직원들이 1년에 두 차례씩 근무시간에 고아원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6년 전부터는 SCGA(남가주골프협회) 주니어 선수들에게 무료로 장갑을 지원하는 등 골프 꿈나무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품질우선주의는 현재진행형

그렇다고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그가 항상 탄탄대로만 걸어 온 것은 아니다. 2008년 이후 불경기의 영향으로 HJ는 매출하락으로 고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그는 매출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골프장갑 외에 야구·풋볼 장갑, 팔 토시 등을 개발해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특히 토시는 지난 1월 시니어 LPGA인 레전드투어의 공식토시로 지정됐고 8월 열리는 솔하임컵 대회 공식토시로 선정 될 만큼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품질 하나만으로 승부한 덕분에 HJ는 불경기에도 불구 2010년 이후 납품업체 선정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세계적인 대형유통업체를 비롯 여러 업체들과 OEM 계약을 성사시키며 매출부진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매출은 해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이처럼 사업은 승승장구했지만 2012년 그는 18년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혼 후에도 저와 전 사장님 가족들 모두 유지를 받들어 HJ 발전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회사를 잘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HJ엔 창업주의 경영철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바로 품질 우선주의다.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공장 근로자 한 명이 시간당 약 2.5개의 장갑밖에 못 만들어요. 제작이 100%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다 손마디 관절까지 고려해 재봉질을 해야 돼 제작 시간이 긴 편이죠."

이런 장인정신 덕분에 HJ는 지난 달 유명 골프전문 웹사이트가 뽑은 '최고의 골프장갑' 부문에서 6위를, HJ가 OEM으로 납품하는 브랜드는 1등을 하는 영예를 안아 그동안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골프장갑 외에도 앞으로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사용되는 장갑을 제작하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물론 최고의 품질로 말입니다.(웃음)"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오랜 경영철학을 지키려 노력하는, 커다란 백팩을 메고 분주한 발걸음을 총총히 옮기는 중년의 CEO의 뒷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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