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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모국 위해 목숨을 바치다

메모리얼데이 특별기획…6·25 참전 미주 한인 전사자 최소 17명

대부분 하와이 출신…캘리포니아 2명
전쟁 발발 첫해에 가장 많은 8명 숨져
최저 19세, 평균 22세…최고 계급은 소위


위기에 처한 모국을 구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가 끝내 산화한 한인 젊은이들이 있다.

67년 전 발발한 6.25전쟁에서 미군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한인이 최소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한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데이(5월 29일)를 앞두고 국립 문서기록청(National Archives)이 제공한 6.25전쟁 미군 전사자 3만6574명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다. 이 숫자는 한인이 많은 사용하는 성씨라도 타민족일 가능성이 있는 이름의 전사자는 제외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한인 전사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 전사자 중 대부분은 하와이주 출신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리차드 이 상병(육군 24보병사단)과 어네스트 임 일병(육군 24보병사단)을 제외한 15명이 하와이에 거주하다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뉴욕 등 미 동부에서는 한인 전사자의 이름을 찾기 힘들었다. 이는 당시 미주 한인 이민사회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등 서부를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와이 호놀룰루 출신의 당시 나이 20세 청년 제이 김 이병은 육군 24보병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전쟁이 시작된 지 2주 만인 1950년 7월 8일 전의 전투 중 금강 방어선 부근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다. 결국 그는 돌아오지 못했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이병의 시신은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으며 현재까지 수습되지 않은 상태다.

다음달인 1950년 8월에는 약관 19세인 김철수 일병(육군 25보병연대)이 마산 전투 교전 중 목숨을 잃는다. 11월 27일에는 제2차 청천강 전투에서 알버트 장 병장(육군 35보병연대)이 포로로 잡혔으며 역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3명을 포함해 전쟁 첫해인 1950년에는 ▶윌프레드 전(육군) ▶레이몬드 정(육군) ▶찰스 이(육군) ▶서니 이(육군) ▶레이몬드 박(육군) 등 총 8명의 한인 참전용사가 전사했다.

이듬해인 1951년에는 5명의 한인 참전용사가 전사했다. 특히 2월 19일 지평리 전투에서 전사한 육군 674보병대대 소속 티모시 엄 소위는 6.25전쟁 미군 한인 참전용사 전사자 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인물이었다. 이 외에 ▶어네스트 임(육군) ▶케이 이(육군) ▶알버트 김(육군) ▶리차드 이(육군) 등 4명이 사망했다. 또 1952년에는 3명, 1953년에는 1명이 전사했다.

한인 참전용사 전사자 중 가장 어린 나이는 19세의 알버트 김 이병과 김철수 이병, 가장 많은 나이는 32세의 엄 소위였다.

전사자들의 평균 나이는 22세로 가장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태평양 반대편에 있는 모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또 모국의 전쟁터에서 숨진 한인 청년 중 제1해병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1952년 6월 13일 실종된 리차드 김 일병 등 8명의 시신은 전쟁이 끝난 지 6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서한서·황주영 기자 seo.hanse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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