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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미국의 리더십은 공짜로 유지될 수 없다

콜린 파월/전 국무장관

위대한 국가란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을 더 안전하고 좋게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국가다. 한창때 미국은 그 역할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평화를 주창하고 질병과 재난에 대응해 수백만 명의 살길을 찾아주고 자유를 열망하는 이에게 영감을 주는 국가였다.

그런데 미국의 이런 소명이 위협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국무부와 국제원조 예산을 30% 넘게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현실화되면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우며 국제사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비해 미국의 국제원조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우방엔 부담을 안기고, 적성국가들은 활개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냉전이 끝나면 미국이 지구촌의 수호자 역할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미국인들에게 팽배했다. 그 결과 추진된 국제지원 예산 삭감은 결국 한반도와 중동·아프리카에서의 긴장 악화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국제사회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세계 최강의 군사력만 갖고선 안 된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외교인력이 필수다. 협상 실력이 뛰어난 외교관, 빈민촌에 식수를 공급하는 평화봉사단, 재난 현장에 몸을 던지는 구조대원이 미국의 얼굴을 대표할 때 미국은 강해진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35개 개발도상국을 원조해 온 국무부의 노력을 예산 삭감을 통해 '없던 일'로 만들려 한다. 이는 지구촌 곳곳에 휘날려온 미국의 깃발을 내리고,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구촌은 현재 극도의 위험에 처해 있다. 전쟁과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난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인 6500만 명에 달한다.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는 이런 위기를 자양분 삼아 더욱 세력을 키워갈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국무부와 국제개발처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것인가? 국무부의 해외지원 예산을 무려 32%나 줄인 이번 예산안을 놓고 상·하원 의원 상당수가 "시작부터 사망 상태"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들 의원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예산안이 여야 간 예산 협상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의 외교와 국제지원 예산은 들어가는 돈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를 놓고 따지면 안 된다. 대신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지상의 모든 나라가 우러러볼 수 있는 공동체:미국 청교도의 건국 이념)가 되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놓고 예산을 따져야 한다.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만으론 절대 지구촌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협상을 개시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양대 무역진흥기구인 해외민간투자공사와 무역개발청의 존재 의의를 없애버리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노동자 수천 명에게 피해를 주고 정부 적자만 늘릴 것이다. 아프리카 등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미국의 경제개발 투자를 삭감하겠다는 어리석은 조치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자의 95%가 미국 밖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처럼 '미국이 먼저다(America First)'만 떠들면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에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해 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날개를 달아줄 뿐이다. 중국은 트럼프와 정반대로 국제지원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2003년 이후 아프리카에서만 780% 넘게 지원을 늘렸을 정도다.

미국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횃불이 됐고, 원칙과 관대함·공정함·따뜻함을 잃지 않는 나라로서 위대했다. 그게 미국의 방식이었다.

필자는 군인으로 재직하며 전쟁에 대해선 알 만큼 알았지만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선 훨씬 더 많은 걸 배웠다. 피할 수 있는 전쟁은 막고, 반드시 해야 할 전쟁만 하는 것이 국무부와 국제개발처가 하는 일이다. 미국인과 미군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다.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5월 24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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