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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테러 누른 '목적 있는 팝'

"우린 미친 걸까/ 울타리에 갇혀서 장식품처럼 살고 있지/ 너무 편해, 거품, 거품 속에 살고 있는 거야/ 너무 편해, 문제, 문젤 알지 못하는 거야."

타이틀은 '리듬에 묶여있어(Chained to The Rhythm)'다. 지난 2월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케이티 페리가 불러 히트한 노래다. 경쾌한 댄스곡이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왠지 심쿵해진다. 물질에 탐닉한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려는 세태를 꾸짖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도 나온다. "(세상과) 연결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벽을 무너뜨려, 그 높은 곳에서, 거짓말쟁이들아/ 제국의 종말이 똑딱거리며 (다가오고 있지)/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설득력이 없어/ 그들은 사자를 깨웠어, 깨웠어, 우~우~"

얼핏 벽은 멕시코 국경의 장벽을, 제국은 트럼프의 미국을 비틀어대는 말처럼 들린다.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지만 민중은 알고 보면 잠자는 사자. 정치가 그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으니….



페리는 이 노래를 일컬어 '목적 있는 팝(purposeful pop)'이라 불렀다. 팝이 '리듬에 묶여' 팬들의 귀만 즐겁게 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선포한 페리. 새 시대엔 비판의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페리의 '목적 있는 팝'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빛을 발한다. 한순간에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의 현장에서다. 알려진 대로 참사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스타라지만 그의 나이는 고작 23살.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언니, 나 어떡해." 그란데의 겁먹은 전화에 페리가 힘을 실어줬다. "쫄지 마, (무섭다고) 숨으면 지는 거야." 그란데가 용기를 냈다. "맨체스터를 꼭 다시 찾겠다"는 말과 함께.

그 결과물이 지난 주말 열린 '원 러브 맨체스트' 자선공연이다. 불과 보름 만에. 페리가 누구인가. 글로벌 메가스타가 출연한다니 세계 최정상급 가수들도 스케줄을 비웠다. 페리의 '목적'에 동의해서일 터. 저스틴 비버, 마일리 사이러스, 어셔, 콜드플레이, 블랙아이드피스…. 팝송 팬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스타들이다.

공연을 앞두고 페리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국경을 오픈하고, 장벽을 허물어 버립시다. 인류가 공존하는 세상을 바란다면." 철딱서니 없는 가수의 한낱 치졸한 생각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이자 '목적'일지도 모르겠다.

표가 눈 깜짝할 사이(실은 6분)에 동이 나 기네스북에 오를 거라는 보도도 나왔지만 정작 가슴 한 켠을 찡하게 만든 건 공연 중 그란데의 멘트다. "너희가 돌과 몽둥이를 던져도, 폭탄과 폭약을 던져도, 내 영혼을 무너뜨릴 수는 없을 거야. 우린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야."

이어 페리가 무대에 오르자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사랑은 무서움을 이겨내고, 미움을 떨쳐냅니다. 사랑으로 하나 돼요." 그러고는 자신의 히트송 두 곡을 신명 나게 불러 제꼈다. 6만여 명이 질러대는 환호가 하늘에까지 닿았을 터.

테러단체들이 이날 겁 좀 먹었지 싶다. 적개심이나 눈물은커녕 TV화면에 비춰진 관중들의 얼굴엔 웃음이 넘쳐났다. 아무리 강심장의 테러리스트라도 이 장면에 공포를 느꼈을 것 같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등으로 트럼프가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요즈음, 미국 팝가수들의 담대한 용기와 열정이 리더십의 공백을 메워준 것 같아 흐뭇하기조차 하다. 팝이 '목적' 없이 겉돌고 있는 정치판에 일침을 가했다고 해야 할지.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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