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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음악을 사랑한 화학자 보로딘

며칠 전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인 현악 4중주곡을 들었다.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연주된다고 소개된 이 곡은 첼로의 음색이 돋보이는 멜로디로 구성되어 듣는 사람에게 따스함이 느껴지는 봄 날씨 같은 음악이었다. 이 작품은 러시안 작곡가 알렉산더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1887)이 1881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2번 D 장조로 러시아의 색채가 짙다.

보로딘은 1833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조지아 출신의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모든 분야에 있어 집에서 개인 교사를 두어 교육을 받았고, 9살 때부터 피아노, 플루트, 첼로 등의 악기 교습을 받았다. 9세에 폴카를 작곡, 13세에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화학을 전공으로 정하였다. 18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에서 화학과 의학을 전공한 후,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떠난다. 1862년 공부를 마친 후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수많은 논문을 제출하는 등 화학자로서의 커리어를 확고히 다지며 화학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보로딘은 1862년 교수로 재직하던 중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1837~1910)를 만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보로딘은 발라키레프에게 작곡레슨을 받게 된다. 보로딘은 발라키레프의 도움으로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였고, 1869년 그의 나이 36세에 그의 첫 작품인 교향곡 1번이 연주되었다. 초연이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1887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교향곡 1, 2번, 현악 4중주 1, 2번, 피아노 3중주, 피아노 소품 외 여러 작품을 배출하였다. 교향곡 3번과 오페라 ‘이고르 공’은 미완성으로 남긴 채, 1887년 어느 무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음악가로 사는 삶이 짧고, 남긴 작품의 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로딘은 발라키레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큐이와 함께 러시아 5인조(The Mighty Handful)로 불린다. 러시아 5인조는 1860-7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약한 러시아의 클래식 작곡가 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그들은 서유럽식 음악이 지배하는 음악 분야에서 러시아 색채가 짙은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을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였고, 결국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민악파, 즉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그룹이 되었다.



화학과 의학을 전공하여 대학교수로 탄탄하게 경력을 쌓았던 보로딘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음악가로서의 제 2의 삶은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강한 서정성을 보이며 복잡하기보다는 심플하고 낙천적이며, 섬세한 리듬과 선율로 청중을 사로잡는 대단한 능력을 갖췄다. 무소르크스키는 피아노 음악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관현악곡에 집중하였다면, 보로딘의 대표작은 실내악곡에 있다. 그의 현악 4중주 2곡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보로딘 현악 4중주 2번 D 장조는 지금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아 현악 4중주의 메인 레퍼토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주말엔 보로딘의 현악 4중주를 들으며 6월의 아름다운 날씨와 풍경을 만끽해 보면 어떨까?

이영은/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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