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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잘못 남긴 글

[LA중앙일보] 발행 2017/06/12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7/06/11 19:13

'누구에게나 하나 정도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다'는 낭만적 수사는 죽었다.

#카카오톡에 남긴 글.

지난달 30대 한국 국적자 A가 LA공항으로 재입국하려다 강제출국 됐다. 범법 행위도 없었고, 비자 유효기간도 1년이나 남아 있었다.

A는 학생비자 소지자로 LA에서 4년 넘게 살면서 중국에서 열린 선교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A는 입국 때 무슨 이유에선지 2차 심사대로 넘어갔다.

연방세관국경보호국 직원은 A에게 불법 취업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스마트폰을 검사하겠다고 했다. 한국어 통역까지 불러 카카오톡과 소셜미디어를 뒤졌다. 곧바로 한인 업주와 A가 나눈 글이 나왔다. A가 식당에서 취업한 증거였다.

카카오톡의 짧은 글은, 강제출국이라는 살벌한 결과를 남겼다.

#과거가 사라진 세상이다. 후미진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희멀건 색으로 남는 흔적은 없다. 이제 과거는 반짝반짝 생생한 천연색이다. 도서관이나 스크랩을 뒤질 필요도 없다.

클릭 한 번이면 수백 수천 년이 순식간에 현재가 된다.

#페이스북에 남긴 글.

하버드 대학이 왜 '하버드인가'를 얼마 전 만천하에 알렸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사람은 가르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올 가을 하버드대에 들어갈 10여 명이 합격 취소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페이스북 그룹채팅에서 음란물과 인종 비하, 종교 혐오 글을 돌려봤다고 한다. 심지어 아동 학대를 '성적으로 흥분되는 일'로 묘사한 글까지 올랐다. 이곳은 원래 대중문화와 관련된 건전한 내용이 오갔으나 일부가 노골적인 성적 메시지 교환을 제안하면서 변질됐다. 통상 글은 그룹으로 결집하면 행간마다 폭력성이 배게 마련이다.

페이스북의 치기 어린 글은, 이력서에서 명문 하버드대 이름을 지웠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시카고 대학에서 "내가 10대 때 소셜미디어가 있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날 실수로 기록될 행동이나 언행을 남겨놨다면 곤란한 일을 많이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 2009년 버지니아주 한 고교에서는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나중에 불쑥 나올 수 있다"며 "청년기에 올린 충동적인 글이나 사진 등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의 모든 글은 장르로 보면 '연애 편지'다. 온갖 생각과 감정, 주장과 아쉬움, 미련과 분노가 들어있지만 방향과 목적은 이미 정해져 있다. 호감과 구애. 글을 올리는 사람은 쓰기도 전부터 이미 달큼한 정념에 가득 차, 글을 보게 될 상대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필연적으로 도를 넘는(over) 글을 쓰고, 다음날 보면 구겨버리고 싶다. 글의 완성인 퇴고를 거듭하기에는 클릭의 유혹이 너무 강하고 너무 순식간이다.

#지난 일은 잊혀지는 것이 순리다. 망각의 시간은 축복이다. 상처와 치욕, 창피, 실수를 그때 그 당시의 기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행복마저도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지금이 되레 불행해 질 수 있다.

스마트 세상의 편리함은 때론 잊혀지고 싶은 또 잊혀져야 할 것도, 잊혀지지 않는 불행을 낳았다. 현대 사회에 forget이란 없다. 과거가 희미해져야 관용이 끼어들 텐데, 잊지 못하니 용서하기 어렵다. 사회적 관용은 인터넷 그물망에 걸리는 순간 산산조각난다. 빠져나가도 그물에 패인 상처는 깊다.

글을 올리려는 순간,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 날카로운 부메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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