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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잭슨 목련'의 잔혹사

'잭슨 목련(Jackson magnolia)'도 꽃망울을 터트렸는데…. 며칠 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정에 심은 묘목이 3년 만에 꽃을 피우자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커서 일게다.

묘목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기증한 것이다. '미국인들의 깊은 연민을 담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잭슨 매그놀리아'와 관련해선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그리워 백악관 뜰에 심었다는 애틋한 사연이 전해진다.

오바마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 대한 위로와 봄에 다시 피어나는 부활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짤막한 말을 남겨 진한 감동을 줬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잭슨 목련'은 미국 정치의 잔혹사를 자양분 삼아 먹고 자란 나무다.



역사의 시계 태엽을 200년 전으로 되감아 보자. 청년장교 잭슨은 이혼녀 레이철을 운명처럼 만나 사랑을 키운다.

주변의 만류에도 레이철을 아내로 맞아들인 잭슨. 둘은 그러나 몇년 후 한 번 더 결혼식을 올린다. 레이철의 전 남편이 미처 이혼서류를 접수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었다.

잭슨의 정적들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부부의 개인사를 정쟁의 제물로 삼았다.

레이철에 '불륜녀'란 주홍글씨를 덧씌운 것.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되기 전에 결혼을 했으니 변명이 통하지 않았을 터다.

요즘으로 치면 '악성 댓글'에 시달렸을 게 뻔하다. 레이철은 남편의 대통령 취임식도 못본 채 눈을 감았다.

미국 정치사에선 잭슨 부부를 '어포(oppo)'의 첫 희생자로 꼽는다. 정적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벌이는 '뒷조사'를 일컫는다. 원래는 '어포지션 리서치(opposition research)'다.

우리말로 옮기면 '반대파 조사'라고 할까. 선거철만 되면 온갖 종류의 괴문서가 난무하다 보니 그냥 '어포'라고 줄여 정치판 슬랭으로 굳어졌다.

잭슨은 아내의 죽음이 '어포' 때문인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비극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얼마나 분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오바마 역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절 '어포'의 덕을 톡톡히 봤다.

대상은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뒷조사'를 통해 그가 한 번 헤어컷으로 무려 400달러나 지불한 사실을 알아냈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그가 '황제 이발'을 했다니. 뻥튀기 선전을 해대 망신을 줬다.

대통령에 취임해선 '어포' 전문가를 아예 백악관 법률자문으로 특채해 구설에 올랐다. 워싱턴을 바꿔보겠다며 큰소리쳤지만 오바마 역시 권력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트럼프 문건'이 지구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이 담긴 파일이다.

뒷조사를 한 측은 전 영국 비밀정보국(MI6) 소속 베테랑 요원. 트럼프가 모스크바에서 외설적인 파티를 즐겼다가 러시아 측에 약점이 잡혔다는 내용이다. 발주처는 놀랍게도 공화당 내부 소행으로 드러났다. 지도부가 트럼프를 제거하려 은밀히 '어포' 곧 뒷조사를 시켰다는 것이다.

트럼프 말마따나 문건 내용이 허접한 '찌라시'인지, 아니면 정말 실체가 있는 것인지 구름에 가려 있어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의혹이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다.

그런데 잭슨이 목련을 백악관 잔디밭에 심은 진짜 이유는 뭘까. 아내를 못잊어서였겠으나 무엇보다 정치적 목적의 '뒷조사'가 어떤 폐해를 남길지 후대에 경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지 싶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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