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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7가지 보시

[LA중앙일보] 발행 2017/06/16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7/06/15 21:42

참외를 사 왔다. 20년쯤 전 이맘때가 생각났다. 지금은 돌아가신 모친을 모시고 경북 지역으로 여행을 갔었다. 김천, 상주, 그리고 요즘 사드 배치 문제로 한참 시끄러운 성주 일대였다. 곳곳에 참외밭이 있었고 밭이랑 곁에선 할머니들이 조그만 소쿠리에 참외를 대여섯 개씩 담아 팔고 있었다. 시장에 내 놓기엔 너무 못생겼고 크기도 자라다 만듯 올망졸망한 참외들이었다.

"맛있겠네. 우리도 저것 좀 사자." 유난히 참외를 좋아하셨던 모친이셨다. 차를 세우고 두 소쿠리를 샀다. 한 봉지 가득이었다. 내가 말했다. "많이 샀는데 두어 개 더 주세요." 그러자 어머니가 내 손을 탁 치며 말씀하셨다. "야야, 이거 팔아 얼마나 남는다꼬. 우리가 하나 덜 무~면 되지." 그러면서 받아 든 봉지에서 오히려 두 개를 도로 꺼내 돌려주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내밀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고백컨대,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물건 깎는 것은 잘 안한다. 받을 만하니 그만큼 받겠지 여겨서이다.

모친은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셨지만 나중에 혼자 글을 익혀 곧잘 책을 읽으셨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읽은 것을 이야기 해 주기도 했는데 대개는 아무개 아무개가 무슨 무슨 착한 일을 했더니 다음 생에 훨씬 더 좋은 인연으로 태어났다더라는 식의 옛날 이야기였다. 그런 어머니에게 당시 참외밭 사건(?)은 책에서 배운 것에 대한 당신 나름의 실천 철학이었던 것이다.

최근 잡보장경(雜寶藏經)이라는 설화집을 읽었다. 내용이 옛날 모친이 자주 하시던 이야기와 비슷해 반가웠다. 원래 이 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고대 불교 경전이다. 하지만 생활의 지침이 될 만한 구절들이 많아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많이들 찾아 읽는다고 한다. 책에 실린 121개 이야기 중 76번째 '일곱 가지 보시의 인연'이라는 글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안시(眼施), 화안시(和顔施), 언시(言施), 신시(身施), 심시(心施), 상좌시(床座施), 찰시(察施)라는 일곱 가지인데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따뜻한 눈빛이 베풂이다. 부드러운 눈빛, 자상한 눈빛만큼 큰 보시는 없다. ②밝은 얼굴이 베풂이다. 한 사람의 발랄 유쾌한 얼굴 표정 하나가 얼마나 주변을 활기차게 만드는지를 기억하라. ③고운 말이 베풂이다. 다정하고 친절한 말 한마디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모르는 이가 있을까. ④부지런한 몸놀림이 베풂이다. 먼저 들어주고, 먼저 열어주고, 먼저 도와주어라. 몸 아껴봤자 살만 찐다. ⑤진실된 마음이 베풂이다. 배려하는 마음,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자체로 큰 나눔 실천이다. ⑥양보가 베풂이다. 좋은 자리, 편한 자리 고집하지 말라. 굳이 그 자리 아니어도 괜찮다면 그게 더 큰 축복이다. ⑦먼저 살피는 것이 베풂이다. 이는 원래 방사시(房舍施)라 해서 쉴 곳 없는 사람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와 형편이 달라졌으니 지금은 누군가의 필요를 살피고 헤아려 먼저 채워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베풂이라 하겠다.

이상 일곱 가지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인정(人情)이다. 약한 사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농부철학자 전우익 선생의 말은 이미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럼에도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져만 간다. 이런 세상 구원할 유일한 방안은 나부터라도 베풂의 삶을 일상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위에 든 일곱 가지는 돈 한 푼 드는 것도 아니니 어려울 것도 없지 않은가.

"야야, 그러지 마라. 우리가 하나 덜 먹으면 되지." 6월은 깊어가고 참외 향기 그윽하니 다시 어머니 말씀이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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