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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붐 바이 조이 한' 조이 한 대표…다시 청춘의 초심을 쫓다

2001년 '붐' 론칭
셀럽 입소문 타고 대박
미국 내 1000여 곳 납품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도

이후 경기불황 타격
자바 사업 뛰어들어 실패도
신규브랜드 '바바' 론칭하고
온라인몰 열어 '제 2전성기'
가수 GD는 말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맞다. 20대 초반의 청년도 터득한 이 만고불변의 진리는 인생사는 물론 사업에서도 예외를 허락지 않는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는 법이니까. 2000년대 중반 '붐 바이 조이 한'으로 미국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혜성처럼 등장한 조이 한(45) 대표 역시 열흘 붉은 꽃 없는 패션계에서 지난 15년간 제대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한 끝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영원한 아티스트이길 원하나 자신이 만든 옷이 시장에서 팔려야 먹고 사는 사업가로서의 숙명도 함께 짊어진 이 재기발랄한 디자이너의 지난 10년간의 궤적은 정글 속 여전사에 다름 아니었다.
#패션에 미치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90년대 하이틴 스타들의 산실이었던 안양예고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인 1990년 인기 음악프로그램 KBS '젊음의 행진'의 백댄서 그룹 '행진 아이들' 1기로 발탁돼 활동했고 1992년엔 SBS가 주최한 '신세대가요제'에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힙합그룹 '지그재그'를 결성해 참가, 인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대형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앨범 준비를 시작했으나 기획사와 그룹 콘셉트 문제로 마찰을 빚어 소속사를 나왔다. 낙심한 그녀에게 당시 전주에서 30년째 유명 웨딩드레스숍을 운영하던 모친은 패션스쿨 유학을 권유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 가게에서 바느질하며 논 덕분에 유년시절 꿈이 패션디자이너였어요. 당시 연예계 생활에 지쳐 있던 터이기도 해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미국에 왔죠."


유타에서 어학코스를 마치고 1996년 LA 아메리칸 인터컨티넨털 유니버시티(AIU)에 입학한 그녀는 재학기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 작품전에서도 1등을 할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학 시절 내내 시큐리티 가드랑 같이 출퇴근할 만큼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어나 바느질을 할 만큼 패션에 미쳐 있었던 시절이었죠.(웃음)" 이처럼 억척으로 공부하고 방학도 없이 계절학기까지 수강하면서 그녀는 2년 반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녀의 전성시대
졸업 무렵 그녀를 아끼는 교수들은 유명 브랜드의 인턴십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이를 마다하고 자바로 갔다.
"학교를 빨리 졸업한 것도 IMF 이후 한국에서 지원이 힘들어졌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자바에 디자이너 보조로 취직을 했어요."
뛰어난 실력과 승부근성으로 그녀는 자바에서 일한 지 2년 만에 주급 500달러에서 2000달러를 받는 스타 디자이너가 됐다. 남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생활이었지만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는 2000년 남편과 함께 멜로즈가에 자바에서 옷을 떼다 파는 '제임스&조이'라는 옷가게를 오픈했다.
비즈니스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이듬해 직장을 나와 자신의 브랜드, '붐 바이 조이 한(Voom By Joy Han)'을 론칭하고 가게 한 코너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실크를 주소재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존 갈리아노를 연상시키는 화려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그녀의 옷들은 단박에 LA 트렌드세터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멜로즈 거리에선 보기 드문 100~300달러가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날개달린 듯 팔려나갔다. 붐은 승승장구했고 2006년 LA에서 열린 '벤츠 패션위크' 런웨이를 참가하면서 붐의 인지도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덕분에 붐을 취급하는 전국 매장은 블루밍데일, 삭스핍스애비뉴 등과 같은 유명 백화점을 비롯해 프레드시걸, 키트손 등 고급 편집매장까지 1000여 곳에 이르게 됐다. 또 유럽, 아시아, 남미 등 30여 개국에 수출도 하면서 붐의 연매출은 2년 새 10배가 껑충 뛰어 7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제2의 전성기를 위해
그러나 꽃길만 걷는 인생이,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경기 불황으로 비싼 실크소재 의류의 인기가 한 풀 꺾이면서 그녀의 비즈니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2009년 붐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바바(Vava)'를 론칭했다. 다행히 마켓에서 반응은 좋았고 다시 사업은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문득 회의감이 밀려왔단다.
"경기불황을 겪으면서 어느새 돈 되는 디자인만 뽑아내고 있는 저를 보면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디자인을 과감하게 하려면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 싶어 2013년 자바 시장에 뛰어들었죠. 떼 돈 벌 생각으로요.(웃음)"
키머니만 17만달러를 주고 몫 좋은 비싼 자리를 얻어 사업을 벌였지만 오픈 후 본격적으로 자바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그녀는 2년도 채 못돼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당시 200만 달러 이상 날렸어요. 전 재산을 다 잃은 셈이죠.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때 안했으면 언젠가는 또 분명히 했을 테니까요.(웃음)"
사업실패 후 그녀가 집중한 것은 온라인 사업. 2009년 유명 온라인 의류쇼핑몰인 리볼브닷컴(revolve.com)과 계약을 체결한 이후 그녀는 온라인 판매에 집중해 왔다.
"요즘은 백화점들도 힘들다고 할 만큼 오프라인 의류매장은 승산이 없어요. 고객들이 오프라인에 가서 옷을 입어보고 구매는 인터넷 서치를 통해 가장 값이 싼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니까요. 이런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저희도 온라인 판매에 주력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그녀는 지난달 새로운 온라인 쇼핑몰(shoprevava.com)을 론칭하고 바바 전제품을 소매판매하고 있고 아직은 적은 수량이지만 붐 제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또 연내 홀세일 온라인 쇼핑몰 오픈도 앞두고 있다.
"아직도 10년 전 붐 옷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이 있어요. 그래서 온라인에 리미티드 섹션을 따로 만들어 고객이 한 벌이라도 원하면 저희 공장에서 바로 만들어 배송하려고요.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그동안 현실과 타협하느라 잊고 있었던 제 브랜드 색깔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
고단한 현실에 치여 행여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잃을까 고심한 흔적이 치열하다. 그리고 이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민한다는 것은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 있다는 것이기에.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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