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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게일로드' 조양호 회장의 꿈

첫째도 로케이션, 둘째도 로케이션. 부동산 투자에서 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보리밭뿐. 더구나 오일 시추탑이 곳곳에 솟아있어 주변 경관마저 볼품이 없다. 석유 냄새는 또 어떻고.

그런 땅을 35에이커나 사들였다. 가운데 길을 하나 냈다. "이곳을 LA 최고의 명당으로 만들겠다." 큰소리치고는 땅을 쪼개 팔았다. 선전 문구가 그럴싸했다. 꿈을 사라는 것이 아닌가. 척박한 땅에서 무슨 아메리칸 드림을. 땅이 모두 팔렸는지는 기록이 없어 모르겠다. 벌써 백 년 하고도 스무 해가 넘는 옛일이다.

주인공은 헨리 게일로드(Gaylord) 윌셔(1861~1927). 그가 만든 길이 바로 오늘날의 '윌셔 불러바드'다. 당시엔 다들 그가 미쳤다고 했지만 윌셔의 삶을 훑어보면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을 벌였을까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금융인. 가업을 이으라며 아들을 하버드에 보냈으나 1년 만에 때려치웠다. 알려지기로는 사회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던 때문이다.



학업을 접고는 막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한 LA에 와 덜컥 '쓸모없는' 땅에 손을 댔다. 사회주의자가 부동산 투기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둘은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를 일컬어 '턱시도 입은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가 사들인 곳은 지금의 맥아더 공원(그때는 웨스트레이크 파크) 부근. 윌셔 불러바드의 역사를 보면 성경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그 울퉁불퉁했던 길이 지금은 샌타모니카와 다운타운을 잇는 장장 16마일의 LA 최대 번화가로 바뀌었으니….

이 길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1920년대 이후. 이 무렵 지은 빌딩은 대체로 뾰족 건물, 이른바 첨탑 꼴을 하고 있다. 윌턴 시어터와 불럭스 윌셔 빌딩(현 사우스웨스턴 법대 건물)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건축물이어서 그렇다. 영국을 제치고 수퍼파워로 등장했다는 자부심이 한껏 표출됐다고 할까.

그뿐인가. 할리우드 스타들과 서부의 명사들이 어울리니 온갖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하나가 '잇걸(it girl)'. 몸짱, 곧 섹시한 여성이란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잇걸'이 있는 곳엔 권력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파워 런치(power lunch)'다. 힘깨나 있는 사람들의 식사 모임을 이렇게 불렀다. 이 모두 '메이드 인 윌셔 불러바드'다.

이제 와 윌셔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다. 혹 '더 게일로드'를 가면 모를까. 윌셔의 미들네임을 따 지은 아파트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이곳에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고 있을 만큼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어 지금은 한인 노인들이 다수 입주해 있지만.

엊그제 윌셔 불러바드 끝자락에 서부 최고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윌셔 그랜드 센터가 오픈했다. 미국서 뉴욕 맨해튼과 시카고를 빼고는 가장 높은 73층짜리다. 주인은 대한항공. 개관식에서 조양호 회장은 "수십 년간 꿈꿨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USC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운 그에게 LA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게일로드' 윌셔와 조 회장… 어찌 보면 닮은꼴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을 '비저너리(visionary)'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터.

윌셔 불러바드… 한인들이 역사를 고쳐 쓰고 있는 현장이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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