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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 미국인이 유난히 잘 웃는 이유

[LA중앙일보] 발행 2017/07/03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17/07/02 11:13

한국에선 안 그랬다. 장롱 면허 지니고 시속 60킬로로 엉금 버벅 운전을 할 때도 옆에 뒤에 운전 동지들 눈치에는 진땀 흘렸지만 저기 달려가는 경찰차가 겁나진 않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무서울 게 뭐지.

그런데 미국서 운전대를 잡고부터는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번호판에 차량 등록 스티커가 제대로 붙어있던가? 브레이크등은 잘 켜지고 있겠지? 조수석에 던져둔 셀폰은 아예 가방에 넣고 두 손은 핸들 위에 얌전히 올리며 점검한다.

어쩌다 머리에 흰 뚜껑 쓴 꺼먼 차가 옆에서 달리면 슬금슬금 속도를 줄여 멀찍이 뒤따르고 그저 제 갈길 가는 패트롤카에도 뒤통수가 뜨거워 차로를 비켜 내어준다.

공권력 앞에 지레 주눅드는 난데없는 이 근성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한번은 심각하게 고민해봤다. 고민하다가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봤다. 지은 죄도 없는데 경찰차만 보면 왜 심장이 벌렁벌렁한지 모르겠어!

놀랍게도 듣는 이들마다 나두 나두, 공감 하소연 맞장구가 쏟아진다. 물론 우리말 내 하소연을 '듣는 이들'은 미국 사는 한인들이다.

나는 이같은 심리의 이유를 '이민자 본색' 으로 이름 붙였다. 이민자라서 그런거다. 특별히 대놓고 설움을 줘서가 아니라, 공공연히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불이익 당해서가 아니라, 그러기 이전에 이민자들은 옮겨와 새롭게 살기 위한 절차를 밟으면서 내면적으로 학습되는 게 있다. DMV에서 운전면허증을 받다보면 안다. 은행에서 어카운트 하나 열어보면, 비보험으로 병원 진료비를 내보면, '이민자의 터널'을 지나며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학습되는 게 있다. 조심해서 살아라, 문제 일으키지 마라, 기다리고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여기서 살도록 허락해주지만 이 나라에 보탬되지 않으면 허락을 취소할거다….

트럼프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도 괜찮을까, 안전할까, 행복할까를 의문하며 다섯달이 지났다. 취임 후 시행된 과격한 정책 대부분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불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민 정책 전반에 엄격하고 까다로운 잣대가 적용되고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민자 환영의 쌍수를 들었던 미국이 두 팔 접고 안색을 바꾸는 데 당혹감이 든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 은 어디로 가고 있나.

두 해 전, '미국인은 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특별히 잘 웃는가' 를 브라운 대학 연구진이 조사했다. 부자 나라 사람들이라 생활에 여유가 있어 그럴테지 했던 상식에 반전이 있었다.

미국인이 '시도 때도 없이' 잘 웃는 이유가 사실은 이민자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 83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최다 인종 국가인데, 이것이 미국인이 많이 웃는 이유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봤다.

출신국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잘 지내려면 많이 웃을 수밖에 없고 이같은 이민자 사회의 생존 전략이 긴 세월 문화적 특질로 굳어졌다는 분석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잘 살아서 잘 웃는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해 잘 웃게 됐다는 사실, 미국 사회의 이 훈훈한 문화가 이민자 덕분에, 이민자의 나라인 덕분에 형성된 것이라는 얘기는 이유없이 위축되는 '이민자 본색' 을 감내하고 사는 이민자에게 위로를 준다. 서로를 향해 문을 열고 활짝 웃으며 함께 어울려 잘 살아보려 애쓴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 내일은 독립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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