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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문재인의 '뎀프시 펀치'

"여보, 내가 (총알을) 피한다는 걸 깜빡했지 뭐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한 정신병자가 쏜 총에 맞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부인 낸시 여사에게 건넨 우스개다. 피격 소식으로 충격에 빠진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농담할 수 있는 상태'라는 데 크게 안도했을 터다.

그런데 이 얘기는 원래 헤비급 복서 잭 뎀프시(1895~1983)가 타이틀을 빼앗긴 뒤 아내에게 했던 조크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뎀프시를 인용하며 여유를 보인 레이건. 뎀프시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술집에서 내기 권투로 돈을 벌었다. 주먹질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던 것. 그러다 뉴욕에서 진짜 링에 올랐다. 상체를 꼿꼿이 세워 싸웠던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그는 상하좌우로 격렬히 움직이며 상대를 공격해 팬심을 사로잡았다.



드디어 타이틀에 도전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세계 챔피언은 제스 윌러드. 키 6피트 7인치, 몸무게는 240파운드가 넘었다. 반면 뎀프시는 6피트 1인치에 185파운드.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막상 공이 울리자 예상을 깼다. 뎀프시는 KO승을 거두고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러맸다.

전적을 보면 그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60승 가운데 KO승은 무려 51차례. 흥행수입도 사상 처음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금 가치로는 1200만 달러쯤. 미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만하겠다. 뎀프시가 활약했던 때는 대공황 시절이어서 절망에 빠져있던 미국민들에게 그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살아온 시대는 달랐으나 레이건에게 뎀프시는 정치적 동반자나 진배없었다. 뎀프시의 삶을 곱씹어 보면 배울 점이 워낙 많아서다.

레이건은 집권 내내 대 소련 강경책을 썼다. 그의 대외정책 근간은 알려진 대로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다. 군사력을 키워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비아냥을 받자 뎀프시를 내세웠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뎀프시를 조롱하지 않는다." 헤비급 복서답지 않은 왜소한 체격인데도 '골리앗' 복서들을 차례로 눕히며 타이틀을 방어한 뎀프시. 누가 그를 무시하겠는가. 힘이 넘쳐나는데.

레이건의 전략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어 '악의 제국' 러시아도 끝내 해체 수순을 밟았다. 총 한 방 안 쏘고 평화를 달성했으니….

레이건 이후 미국은 힘, 곧 '뎀프시'가 외교정책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 정책 역시 알맹이는 군사력이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길러 미국을 지켜내고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후엔 '뎀프시' 행보를 보이고 있어 진보성향의 지도자로선 의외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을 방문해서는 "대화도 우리가 북한을 압도할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북을 무조건 포용하지 않겠다는 강성발언을 쏟아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북한이 감행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즉각 무력시위라는 맞불 카드를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북의 핵시설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사격 훈련을 지시해 주변을 놀라게 하지 않은가. 역대 보수 정권도 못했는데.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우리(한국과 미국)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어둬 '힘에 의한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뎀프시는 경기를 앞둔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싸운다." 한국이 통일 이후라도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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